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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 Lifestyle Journal.

서진이네 움직이는 집

Seojin's ever-changing house



달마다 멋진 그림이 바뀌어가며 벽에 걸린다. 가구가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위치만 바뀌기도 한다. 세 살 서진이가 사는 이 집은 헵 매거진 편집장 남필우와 일러스트레이터 김새롬의 안목과 감각으로 꾸며졌다. 디자인이 예쁘다면 여행을 갔다가 휴지나 통조림도 기꺼이 사오는 이들은 늘 더 아름다운 공간을 고민한다. 아이의 행복과 상어 장난감의 안전도 빼놓지 않고 고려한다. 세 가족의 집은 매일 조금씩 움직이며 균형을 찾는다.

남필우, 매거진 편집장 & 핀즐 디렉터ㅣ@nampilwoo

김새롬, 일러스트레이터ㅣ@rom____k














하루종일 쳐다만 봐도 예쁠 것 같은 아이예요.

(새롬) 그렇진 않아요(웃음). 요즘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써서 계속 집에 있어요. 원래 오늘도 갔다 왔어야 했는데 땡땡이 쳤어요. 내일부터는 학교 갈 거에요. 그치, 서진아?

(서진) !@$*$@^&!

이거 좋아요?

(새롬) ‘엄마, 누워요.’라고 한 것 같아요.

엄마만 알아듣는 ‘서진어’네요. 아이가 똑똑한 것 같아요.

(새롬) 말이 빠른 편이에요. 외운 거긴 하지만 책 보고 영어 단어도 읽고 그래요.






오기 전에 다른 데 실렸던 인터뷰를 찾아봤어요. 필우님은 ‘그냥’ 헵 매거진 편집장이 아니더라고요. 새롬님도 ‘그냥’ 서진이 엄마가 아니고.

(필우) 필름 사진을 이야기하는 헵 매거진을 만들면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해요. 매거진과 단행본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별도로는 핀즐(Pinzle)이라는 곳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해외 아티스트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해요. ‘그림 구독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원래는 음악을 했었다고 들었어요.

(필우) 맞아요. 음악 일을 하다 보니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려면 악기도 사야 하고 어쨌든 고정 수입이 있어야겠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작은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어요. 고정 급여가 생기니까 떨치고 나오기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9년을 쭉 다녔어요. 요즘은 음악으로 표출하고 싶던 에너지를 그래픽 디자인이나 매거진, 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롬) 오빠는 몇 번 해봤는데 저는 인터뷰가 처음이에요. 대학교에서 전공하긴 했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던 사람은 아니에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회사에 다니다가 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림을 배워 취미 삼는 정도였어요. 오빠가 일러스트페어에 같이 가자고 했던 날이 계기가 되어 조금씩 전시도 하고, 페어도 하고, 이렇게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네요. 사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작업을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컴퓨터를 켤 새가 없어서 1년 넘게 아예 손을 못대고 있거든요. 최근에 아이패드가 생겨서 아이가 자거나 어린이집에 갔을 때 짬을 내서 낙서를 해보고 있어요. 일단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씩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어려운 일을 하나도 아닌 동시에 여러 개를 하고 있는데, 에너지는 어디서 얻어요? 집에서 쉬면서 충전을 하나요, 아니면 밖에서 얻어 오나요?

(새롬) 저는 확실히 나가서 사람 만나 수다 떨면서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쳐지거든요. 육아하느라 종일 집에 있더라도 낮잠은 거의 안 자요. 잠은 밤에만 자고, 낮에는 거의 소파에 앉거나 누워 있지도 않아요. 계속 움직여요. 서진이가 어린이집을 가도 청소를 하거나 탁자에 앉아 작업하거든요.

(필우) 저는 누워 있는 거 좋아해요.

(새롬) 오빠는 집에 오면 어딘가 파묻혀 있어요. 소파나 침대에(웃음).

두 분이 정반대네요.

(필우) 저는 밖에서는 에너지 충전을 못 해요. 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출퇴근을 버스로 하는데 앉아서 갈 때가 거의 없어서 자거나 휴식을 취하기가 어려워요. 일하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요. 책상에 엎드리거나 등받이에 기대어 쉬는 일은 전혀 없어요. 밖에서 그렇게 다 쓰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없어요. 예전에는 새롬이랑 둘이니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없던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도 했어요. 급속 충전한 에너지로 집에서 또 일하기도 했는데, 이제 집에 서진이가 있으니까 남은 작업을 집에 와서 하기는 힘들어졌어요.

밖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때는 집에서 회복을 하나요?

(필우) 그게…전 부정적인 감정이 거의 안 들긴 해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집에서는 티를 안내요. 머릿속에서 계속 곱씹다 보면 웬만한 건 해결이 돼요. 내가 과민했던 거고, 어쨌든 저는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라며,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어려운 마음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새롬이한테 얘기해요. 말하고 나면 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새롬) 늘 그래요. 오빠는 기복이 없어요.

평일이면 필우님은 출근을 하고, 새롬님은 집에서 일하나요?

(새롬) 네.

(필우) 육아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찍 집에 오려고 새벽같이 출근을 했다가 오후 5시쯤 퇴근해요. 저녁 시간은 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두 돌이 조금 지난, 한국 나이 세 살의 아들과 보내는 일상은 어떤가요?

(새롬) 서진이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요. 그래서 요즘은 하루가 너무 길어요. 아침 먹이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아도 시계 보면 점심시간도 안됐어요. 가족들이 다 같이 집에 있는 연휴 동안은 낮잠도 안 자니까 정말 힘들어요. 버티다가 안 되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요. 아기가 차를 타면 좀 자거든요. 그렇게라도 낮잠 좀 재우고 일어나면 점심 먹이고, 산책하고 오면 그제야 두 시.

(필우) 서진이는 호기심이 정말 많아요. 엄마, 아빠를 닮았나 싶어요. 새로운 것에 손뼉을 치며 감탄해요. 요즘엔 갯벌에 꽂혀서 서해에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조개 줍는 걸 좋아해요. 한참을 삽질하다 와요.

갯벌에서 노는 게 재밌긴 하죠.

(새롬) 조식이나 먹을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연휴에 호텔에 놀러 갔다가 서진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상어 같은 바다 생물들을 좋아하거든요. 바다를 보러 갔는데 물이 빠져서 다 갯벌인 거에요. 그래도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더니, 이번엔 편의점에 파는 아이들 삽을 보고 사달라고 우는 거예요. 사준 게 아깝지 않게 모래 놀이를 실컷 했어요.

(필우) 아이 덕에 즉흥적으로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로운 곳에 다니는 것은 재밌어요.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일도 발견하게 되고요.

아이도, 엄마와 아빠도 모두 좋은 일이네요.

(새롬) 서진이도 우리랑 노는 게 재밌는지 주말이 지나면 학교를 안 간다고 해요. 오죽하면 원장 선생님이 재미없게 좀 놀아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학교에 온다고. 어제는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어요. 그래서 월요일인 오늘 오빠가 회사를 안 가고 연차를 냈거든요. 서진이가 학교에 가면 둘이 오붓하게 시간도 보내고 하려 했는데 결국 또 안 갔어요(웃음).

(필우) 둘이 놀러 가려고 했거든요. 아침에 아빠가 회사 가는 걸 봐야 서진이도 평일이구나 생각하고 어린이집을 가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아침에 회사 가는 척까지 했는데 실패했어요. 저희랑 노는 게 재밌나보다 생각해요.

뿌듯하겠어요.

(필우) 정말 뿌듯하고 너무너무 힘들어요.

(새롬) 아기가 일찍 일어나는 만큼 저녁 9시면 자니까, 밤에 둘이서 영화를 꼭 보자 다짐해요. 매번 다짐해도 매번 등만 붙으면 잠들어요. 다음 날 어린이집을 가기만해도 피곤을 무릅쓰고 밤에 놀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힘을 비축하는 쪽을 선택하게 돼요.

원래 어디 다니는 걸 되게 좋아해요. 여행이 아니더라도 거의 집에 안 있고 항상 카페든 전시든 다니면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에 맞춰야 해서 지금은 힘들더라고요. 밖에 나가더라도 아이가 가만히 있지 못해서 힘들어요. 야외 공원이나 넓은 잔디밭이 있는 카페가 아니고서는 거의 못 가요. 장난감이 없으니까 서진이가 자꾸 집에 가자고 하거든요.






코로나가 많은 걸 바꿔놓았겠어요.

(새롬) 당연하고 지루하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깨닫고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화되어 서진이가 어린이집도 못 가던 때는 집에서 정말 힘들었어요.

(필우) 의정부로 이사 오기 전, 신혼집이 일산이었어요. 작은 오피스텔이었는데 그땐 정말 뭐 조금씩 사고, 집 꾸미는 게 저희 부부 낙이었어요. 거기보단 조금 큰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걸 포기해야 했어요. 아파트라는 틀 안에서 뭘 맞추려고 하니까 각이 안 나오는 거에요. 게다가 아이가 있으니까 맞춰야 하기도하고.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집에 오래 있으려니 이 공간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봐야겠다 싶어서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 알아요? ‘신혼 집에 아이가 생기면 일어나는 일’ 이라고 단계별로 일단 거실에 매트가 깔리고, 아이 장난감이 늘어나고, 떡하니 커다란 미끄럼틀이 설치되더라고요.

(필우) 아. 공감되네요. 원래 아이템 진열해 놓고 그런 거 좋아하는 데 다 치웠어요. 가구도 아이에 맞춰 옮기고요. 요즘도 가구는 자주 옮겨요. 새로 사지 않더라도 위치만 바꾸는 것으로 전환이 되니까요. 서진이가 기어 다닐 무렵에는 아이 눈높이가 바닥에 있잖아요. 그땐 아무거나 주워먹지 못하게 신경을 썼어요. 걷지 못해도 온통 누비고 다닐 수 있거든요.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제가 보는 구조는 자라는 서진이에 맞춰진 거네요.

(필우) 저희가 원하는 예쁜 인테리어와 서진이의 절충안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얼마 전엔 제 방을 서진이한테 내어줬는데, 자기 방에 프라이드가 대단해요. 이제 조금 커서 뭐가 자기 거고 뭐가 아닌 걸 알거든요.

아, 귀여워요.

(새롬) 눈 뜨면 ‘남서진 방에 가자’라 해요. 거실에 있는 건 친구들이 오거나 한 특별히 신난 경우가 아니면 잘 안 건드리긴 해요. 주방에서 뭘 막 꺼내다가도 ‘엄마 거야’라고 하면 알아듣더라고요.

(필우) 아기들이 다 호기심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주방이랑 냉장고가 그렇게 재밌나 봐요. 아이템도 촘촘히 많아서 맨날 꺼내서 쏟아붓고 했는데 이제 조금씩 말을 알아들으면서 소유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아빠 거, 엄마 거라고 하면 안 만지고 자기 방에 있는 것만 가지고 놀더라고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요.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집안의 가구가 계속 이동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진이가 서진이 방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각자 마음에 드는 공간이 따로 있을까요?

(필우) 둘 다 거실이지 않을까요?

(새롬) 주방에 할 일이 워낙 많아 거기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제 공간이긴 해요. 가장 맘에 드는 공간이라면 그나마 취향껏 꾸밀 수 있는 거실이에요. 침실도 사실상 서진이 놀이터고, 나머지 방 하나는 옷방이거든요. 원래 거실에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아이가 중독되는 것 같아서 없앴어요. 노트북으로만 유튜브를 보여주는데, 낮엔 아빠가 회사에 가져가는 걸 알고 있어요.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만 조금 보는 거로 제한을 두려고 해요. 서진이한테 노트북은 까투리에요. 까투리 나오는 것만 생각해요.


까투리요?

(필우) <엄마 까투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새롬) 텔레비전은 상어였어요. 텔레비전에서 핑크퐁 아기상어 시리즈를 줄창 봤었거든요. 유튜브에도 상어 영상 종류가 엄청 많은데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해 가면서 열심히 골라 보더라고요. 다양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있으니 아기한테 얼마나 재밌겠어요. 하지만 아빠가 퇴근하고 노트북으로 까투리만 보는 걸로 단호하게 끊고 나니까 훨씬 좋아요. 서진이에게도 화면 밖에서 다른 재미도 찾고 혼자 노는 것도 배울 기회가 되고요. 텔레비전 자리에 있던 구멍을 가리느라 액자와 그림도 최근에 샀어요.

(필우) 머리가 커지기 전까진 그렇게 지낼 것 같아요.








텔레비전이 없는 삶은 두 분에겐 어때요?

(새롬) 텔레비전이 없어진 자리에 저희가 좋아하는 가구와 그림을 두니까 훨씬 좋아요. 주변에 예쁜 카페도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기분을 내거든요. 아기 장난감은 어쩔 수 없어요. 저희 취향으로 방을 꾸며둬도 서진이가 핑크퐁을 좋아하니까 결국 예쁜 방 안에 들어가는 장난감은 아기 상어에요.

아기 상어 천국 속 어린이용 드럼이 눈에 띄었어요.

(필우) 제가 선물했어요. 제가 드럼을 쳤었거든요. 자식 자랑 같은데 서진이도 박자감이 꽤 있어요. 반복해서 드럼 소리를 들려주고 몇 번 같이 쳐 보면 금세 박자를 맞춰서 쳐요. 혼자 방에서 마구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요(웃음). 좀 더 크면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어요.





이 집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아이템은 뭐에요?

(필우) 거실에 식물들이요. 조금 전에 들여왔어요(웃음).

(새롬) 베란다에다 식물을 많이 키웠던 적도 있었어요. 오빠가 되게 좋아하거든요. 한 번은 키우던 레몬나무에 하루살이 같은 게 생겨서 비료를 줬는데 그 이후에 아무리 물을 주고 볕을 쪼여도 냄새가 안 빠지더라고요. 어느날부턴가는 서진이가 막 나무가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울면서 할머니네 가져다 주라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시댁에 다 보내버린 다음에는 키우지 말자고 했었어요.


그런데 다시 들여왔네요?

(필우) 오늘 촬영을 핑계삼아서 화분을 몇 개 사왔어요. 서진이가 또 무서워할까봐 덩치가 큰 순서대로 아빠 나무, 엄마 나무, 아기 나무라고 불러줬어요. 그러니까 덜 무서워하더라고요.

(새롬) 서진이 머릿속에는 온통 상어가족이라 색깔을 표현하는 데도 쓰여요. 분홍색은 엄마 상어, 노란색은 아기 상어, 이런 식으로요. 자기가 아가라서 서진이는 노란색을 좋아해요. 할머니는 주황색, 할아버지는 초록색, 그렇게 색 표현을 배웠어요.

핑크퐁이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네요.

(필우) 저희가 좋게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었어요. 아이용인데 음악도 잔잔하고, 영상도 예뻐서 아기한테도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만 보여줬었는데, 어느 날 핑크퐁을 본 순간 서진이가 거기에 빠져버린 거에요. 아이들도 강렬하고 센 거 좋아하잖아요. 너무 못 보게 하는 것보다는 네가 좋다면 봐라, 대신 좀 더 클 때까진 우리가 조금은 통제를 하겠다, 정도로







스스로에게도 정해놓은 가이드 라인이 있나요?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하는 루틴 같은.

(필우) 새롬인 청소를 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도 해요.

(새롬) 아이가 있는 집의 지극히 평범한 수준인 것 같은데요.

(필우) 청소를 정말 잘해요. 꾸준하기가 힘든데 매일매일 깨끗하게 청소를 해요.

건강을 생각한 루틴인가요?

(새롬) 그렇기도 한데, 저는 정리된 공간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뭔가 어질어져 있으면 마음도 불안하고 예민해져요. 오빠가 출근하고 서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가장 좋은 게 집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거예요. 깨끗한 공간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음악이든 영화든 틀어놓고 제 작업을 해요. 그 시간은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아요.

(필우) 저는 어질어져 있어야 아이디어가 생겨요. 손을 뻗으면 잡히는 거리에 책이든 물건이든 쌓여 있는 게 좋아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나만 알면 괜찮은 타입. 결혼하고 바뀌고 있어요. 새롬이가 청소를 열심히 하니까 물건을 아무 데나 두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저도 이제 정리된 공간이 편안해요.

두 분은 따로 일상을 기록하는 방법이 있나요? 예를 들면 저는 화가 났던 일이나 당황한 기억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노트에 일기를 쓰고, 좋았던 일을 기억하려고 블로그를 해요.

(필우) 데스노트 같은 건가요(웃음)? 어렸을 땐 저도 일기를 많이 썼어요. 저도 아내도 외둥이거든요. 대놓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마도 기본적으로 깔린 쓸쓸함이 있었겠죠? 혼잣말하거나 비밀 일기를 쓰는 걸 좋아했어요. 싸이월드 시대 이후로 노트에 쓰는 일기는 줄었어요. 컴퓨터로 쓰다가 요새는 휴대전화의 메모 기능을 사용해요.

어떤 이야기가 적히나요?

(필우)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기록하는데, 크게 세 가지에요. 하나는 공상. ‘이거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을 적어놔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있고, 나중에 봐도 계속 재밌는 아이디어도 있어요. 두 번째는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절대 잊어버리기 싫은 재밌는 꿈은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찾아서 적어요. 마지막은 새롬이랑 준비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는데, 관련된 아이디어를 적어두고 있어요.





헵 매거진의 지난 호를 보면 마빈 게이의 노래 ‘What’s going on’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잖아요. 그래서 필우님의 공간은 평소에 어떤 음악이 나오는 곳일까 궁금했어요.

(필우) 애기 음악이요(웃음). 어쩔 수 없어요. 그거 말고는 다양하게 들어요. 엘피판으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해서 새롬이가 자주 선물을 해줘요. 새롬이는 디자인이 좋은 거, 그림이 예쁜 걸 고르는 데 그렇게 랜덤으로 사서 듣게 된 음악이 좋은 게 진짜 많은 거에요. 해외 인디 팝을 요새는 많이 듣고 아침엔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기도 하고.

(새롬)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데 제목을 외우거나 찾아 듣진 않아요. 오빠가 음악에 관심이 많아 좋은 음악을 잘 찾으니까 옆에서 같이 들어요. 오빠 말처럼 저는 책도, 음악도 표지를 보고 예쁜 걸 고르거든요. 헵 매거진도 표지가 예뻐서 좋아하지만 다 읽어보진 않았어요.

(필우) 아, 그래(웃음)?

(새롬) 임신했을 때는 재즈를 많이 들었어요.

(필우) 오히려 애들한테는 변주가 많은 재즈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박자가 딱딱 떨어지는 정박이 아이한테는 안정감을 준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 엄마가 듣기 좋은 게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까요?

의식주 중에서 조금 더 신경 쓰는 게 있다면 뭐예요?

(필우) 저는 입는 거요. 예쁜 옷을 다양하게 입는 걸 좋아해요. 결혼하고 살이 많이 쪄서 옷을 사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조금씩 내려놓고 포기해 가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옷 잘 입는 멋있는 사람은 TPO라고 하죠. 상황이나 때에 맞춰 옷을 잘 어울리게 입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화려한 옷을 입다가도 배경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아웃도어나 트레이닝을 입을 수 있는 게 멋있어요. 음악처럼 특정 브랜드를 좋아하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위해 가능성을 열어둬요. 예를 들면 ‘마르지엘라’를 너무 좋아해 그 브랜드만 입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잖아요. 나를 스스로 가두는 일 같아요. 브랜드나 착장에 관심을 열어두면 여러 사람과 얘깃거리가 많아지고요.

아침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를 때도 그럼,

(필우) 네. 오늘 어떤 활동이 예정되어 있는가를 떠올려요. 대부분은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게 될 거라 요새는 후디를 주로 찾아입죠.

(새롬) 저도 옷을 좋아해요.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진 않지만, 인스타그램으로 옷 구경도 자주 하고 그러다 예쁜 게 있으면 고민하다 사기도 해요. 요즘은 또렷한 원색이 좋더라고요.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아요.

(필우) 북유럽이 화려한 패턴으로 유명하잖아요. 저희가 같이 핀란드 여행을 갔을 때는 마리메꼬(Marimekko) 보고 놀랐어요.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

(새롬) 맞아요.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필우) 이걸 사람들이 입고 화사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 도시에 살아보지 않은 저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근데 이제 사회가 미세먼지에 코로나로 다운되어 있으니 원색이 힐링 포인트가 되더라고요. 아기 옷도 새롬이 옷도 쨍한 옷을 선호해요. 추워지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집 꾸미기 같은 ‘주’도 관심이 많고, 음식도 잘 해먹어요. 답하다 보니 의식주에 골고루 관심이 많은 사람이네요. 특히 오븐 요리를 좋아해요.






5분?

(필우) 아니요(웃음). 3분 카레 같은 간단 요리가 아니고 오븐에 해산물이나 채소를 넣어 구워 먹는 거요. 금방 근사한 요리가 되니 간단 요리긴 하네요. 라따뚜이처럼 야채, 치즈, 해산물, 고기 등 가진 재료를 썰어서 넣고 돌리면 되니까 자주 해먹었어요. 지금은 오븐이 망가지기도 하고 아이 음식이 주가 되다 보니 오븐 요리와 멀어졌네요.

가진 재료로 나와 식구들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도구네요, 오븐은. 요리는 누가 더 좋아해요? (새롬) 오빠가 자주 해요. 신혼 때는 한동안 예쁘게 브런치 차려 먹고 그랬는데, 아이 낳고는 거의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기를 돌보는 일 중에서도 특히 먹이는 데 가장 신경을 많이 써요. 뭐라도 더 먹게 하려고 종일 만들고 먹여요. 대신 오빠에게 줄 음식을 만든다거나 예쁘게 세팅하는 건 좀 뒷전이죠.

(필우) 눈치껏 챙겨 먹어요(웃음). 언젠가부터 주방에서 동선이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빠지긴 했는데 여전히 요리해서 누구 먹이는 걸 되게 좋아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가 있나요?

(필우) 해산물을 좋아해요. 연어나 조개 이런 거. 가리비 요리도 잘 해먹고, 최근에 뒤늦게 바지락에 꽂혀서 한참 해먹었어요.

(새롬) 이번 연휴 때도 해산물을 집에서 되게 많이 먹었어요. 바지락탕 해먹고, 다음 끼니에 조개탕 해 먹고.

해산물은 왠지 요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조개류를 집에서 요리할 때 팁이 있나요?

(새롬) 옆에서 보면 되게 간단한 것 같더라고요.

(필우) 해감만 잘하면 돼요. 물에 소금을 넉넉히 넣고 어두운 곳에 둬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보면 30분 정도를 권장하는데 저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까지 해요. 그러면 바다에서 온 흙이나 이물질이 싹 빠져나가요.

집에서 먹는 밥은 왠지 더 편안하고 맛있잖아요. 식탁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필우) 저희는 서진이 얘기가 제일 많죠. 아기가 요즘 이렇더라,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의 ‘서진 토크’가 가장 많고, 그다음은 저희가 가고 싶은 곳 이야기가 많아요. 사실 정말 답답하잖아요.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올해 어디 갔을 텐데, 대신 국내에 어디 가자, 뭐 하자 그런 얘기들을 나눠요.

집 밖에 나가고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잖아요. 밖에서의 경험이 집에 활용되기도 하나요?

(필우) 많이 있어요. 당장 집을 꾸미는 데도 여행에서의 경험들이 쓰였어요. 해외여행을 다니면 에어비앤비를 많이 활용해요. 가기 전에 웹으로 많이 보고 집을 선택하잖아요. 처음에는 디자인이 예쁘고 깔끔한 집을 골랐어요. 몇 번 실제로 그런 집에 머물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조금 오래되고 지저분하더라도 현지스러운 집을 찾기 시작했어요. 느껴보고 싶어서요. 낯선 땅에 가면 저희가 보고, 먹고, 느낀 게 그대로 남아요. 그래서 현지인의 집에 가서 유심히 봐요. 비누라던가 샴푸부터 어떻게 구성해놓고 사는지 자세히.

여행 가면 이건 꼭 한다! 하는 게 있나요?

(필우) 슈퍼마켓 구경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어디에 뭐가 있다더라 하는 유적지, 맛집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오늘은 이 지구 보고, 내일은 저 지구에 가자 정도만 계획을 세워요. 오늘 본 것 중에 좋았던 게 있으면 다음 날에 또 보러 가기도 해요. 준비 없이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게 좋아요. 여행 가면 아주 열심히 돌아다녀요. 그 중에서도 슈퍼는 꼭.

슈퍼에서는 뭘 구경해요?

(새롬) 그냥 보다가 통조림 같은 거 사보고 그래요. 휴지나 과자 이런 것도 사요. 패키지가 예쁜 것 중에서 잘 안 상하는 것들(웃음). 그릇도 잘 사와요.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이나 세컨핸드 숍도 찾아서 구경하고 빈티지 접시 같은 걸 사와요.

(필우) 핀란드에서는 눈이 막 돌아가서 그릇을 잔뜩 샀어요. 깨질까 걱정 되어 다 제쳐놓고 그릇만 꽁꽁 싸 왔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높이 사는 점이 있다면 하나씩만 얘기해주세요.

(필우) 먼저 해봐. 많잖아.

(새롬) 제가 구박을 하긴 하지만, 오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요. 매거진 편집장으로 아는 사람도 많은데, 매거진 작업은 정말 좋아서 하는 일 중 하나에요. 기획부터 디자인을 다 해요. 인쇄까지 작은 것도 일일이 신경 써 가면서요. 그 일정을 회사 생활하면서 소화해요. 발송도 혼자 해요. 주문 들어오면 봉투에 사진 넣고, 스티커 붙여서 글씨 쓰고, 택배 포장도 다 하거든요.

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매거진 하나 만들면서도 저는 힘들어서 데스노트를 쓰고 난리를 치는데, 정말이지 대단하네요.

(새롬) 게다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절 위해 육아에도 많은 부분 참여해요. 서진이랑 놀이터에 가고, 목욕시키고, 기저귀 가는 것까지 다 하니까요. 많은 일을 동시에 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죠. 전 하나 하면 그것밖에 모르거든요. 관심 밖의 분야에는 특히 취약해서 간단한 공인인증서도 매번 헷갈려요.

공인인증서는 저도 어려워요.

(새롬) 그래서 오빠가 해줄 때가 많아요. 머리는 하나인데 어떻게 이걸 다 해내는 건가 싶어요.

(필우) 좀 더 얘기해봐(웃음).

이제 필우님 차례에요.

(필우)새롬이는 감각이 뛰어나요. 저는 멋있다 싶은 게 있으면 보고 감탄하는 포인트를 찾아요. 기억해뒀다가 활용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이 보려고 노력해요. 음악할 때는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들었어요. 세상에 나와 있는 음악을 다 들어야 나갈 방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새롬이는 별로 그렇지가 않은데 타고난 감이 좋아요. 논리적으로 이래서 이게 좋다고 설명하진 못하지만 예쁜 걸 직감적으로 찾아내요. 그래서 시안이 세 개가 있으면 새롬이한테 먼저 가져가서 의견을 물어요. 제가 못 보는 걸 찾아내는 눈을 가졌어요.

(새롬) 저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오빠는 신중해요.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데 제가 1초가 걸린다고 치면, 오빠는 몇 분, 몇 시간까지 곰곰이 생각해요.

(필우) 진짜 그래요. 저는 하루, 이틀 걸려요. 아니 주어진 데드라인이 있으면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해요. 그래서 새롬이가 결정을 미룬다고 답답해하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서진이가 사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나요?

(필우) 제가 이전부터 말하고 다니던 건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요.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뜨거운 오토바이 배기구는 딱 서진이 키쯤 있어요. 담배를 쥔 어른의 손도 그 높이고, 자동차 라이트가 켜지면 아이 눈부터 부셔요. 아직은 이 도시는 배려가 부족하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아이의 눈높이도 고려할 수 있는, 타인을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인터뷰와 글 | 조서형 에디터 필름 사진과 손글씨 | 김지욱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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