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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근히 끓여야 제맛

Creating deep flavours of life


카레는 어떤 재료를 넣고 끓여도 카레 맛이다. 성수동에 사는 김현욱, 조서형 커플은 말하자면 카레 같은 사람들이다. 따로 떨어져 각자의 여행을 하던 때도, 다시 돌아와 일을 하면서도, 이제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기 향을 진득하게 풍긴다. 고민 끝에 맞는 삶의 자세를 찾은 것 같다는 그들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찬찬히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낼 깊은 맛을 기대한다.


조서형, 매거진 에디터 @veenu.82

김현욱, 자영업자 @ukrideabike











카레가 정말 맛있어요.

(현욱) 온다고 해서 넉넉히 만들었어요. 카레는 어려서부터 좋아하기도 하고, 제일 많이 해 먹는 음식이기도 해요.


소울푸드 같은 건가요?

(현욱)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저녁 아홉 시쯤 집에 오니까 학생 때도 형이랑 저녁을 알아서 챙겨 먹었어요. 반찬을 여러 개 놓고 먹기보다 한 그릇에 해결할 수 있는 게 편해서 카레를 좋아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대학교 다닐 때도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도 밥은 거의 해 먹었어요. 제육볶음이나 부대찌개처럼 밥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반찬 위주로요.


맛있는 카레를 만드는 팁이 있나요?

(현욱) 이것저것 다 넣어서 만들어 봤는데 재료로는 닭 다리 살이 최고예요. 아무래도 카레는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여러 번 다시 데워서 먹게 되잖아요, 닭은 그래도 식감이 유지돼요. 질겨지지도 않고, 조리도 쉽고요. 애용하는 제품은 인도 브랜드에요. ‘Kitchens of India’의 버터 치킨 커리. 오늘은 강황 가루에다 토마토, 마늘, 생강, 생크림 같은 걸 넣고 오래 끓여 만들었어요.


서형님은 카레, 좋아해요?

(서형) 좋아해요. 일식 카레 집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어요. 10시간 일하면 한 그릇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어요. 저는 미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라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 맛있다고 느껴요. 끼니마다 여러 가지를 맛보고 싶은 욕심이 별로 없어서 차림이나 설거지가 덜 번거로운 한 그릇 음식이 저도 좋아요.






입고, 먹고, 사는 것 중에 먹는 일이 좀 뒷전인가요?

(서형) 음. 셋 다 뒷전인 것 같은데요(웃음). 저도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고, 스무 살에 나와 살았어요. 여기서 성향 차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데 저는 그래서 아예 음식을 안 해 먹는 삶을 택했어요. 어차피 입이 저 하나니까 학생 때는 주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밥을 먹었고, 아니면 시리얼이나 과자를 먹었어요. 지금도 요리는 오빠가 다해요. 가끔 미안해서 제가 하려고 하면 싫어하더라고요.

(현욱) 서형이가 한 거 별로 안 먹고 싶어요. 저는 그래도 의, 식, 주 중에는 먹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 둘은 세 끼 꼭 챙겨 먹거든요. 옷은 좋아하지만 중요하진 않고, 주는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아요. 지하만 아니면 돼요. 지하는 답답해서 싫어요.

(서형) 저는 싼값에 지낼 수 있다면 지하도 괜찮아요.


집이 별로 안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 비해, 꽤 괜찮은 집인데요.

(현욱) 만족스러워요. 마침 1층에 상공사가 있는 상가 건물이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어요. 서울 생활 5년 차인데, 거실이 있는 집에 사는 건 처음이에요. 고향인 정읍에 있는 집에는 매일같이 친구가 놀러 와 있었어요. 별거 안 해도 같이 텔레비전 보고, 플레이스테이션 하고, 만화책도 아주 죽어라 봤죠. 이 집은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을 만큼 넓어서 좋아요.

(서형) 거실 테이블만 중고나라에서 사고, 나머지는 거의 친구들이 쓰던 걸 받아서 사용하고 있어요. 냉장고랑 에어컨은 오빠 친구가, 손님방에 침대랑 거실의 소파는 제 친구가, 페인트칠은 제 직장 동료랑 친구가 와서 도와줬어요. 책장은 인테리어하는 친구가 준 나무판에 우유 박스를 걸쳐서 쓰고 있고요. 의자도 여기저기서 안 쓰는 거 받아왔어요.


이 집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물건은 뭔가요?

(현욱) 지금 앉아 있는 의자요. 서울숲에 ‘에포 프로덕트’라는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두 개 줬어요.


안 쓰는 물건을 얼마든지 받아올 만큼 집이 넓어요.

(현욱) 그게 맘에 들어 이 집을 골랐어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는 ‘카우치 서핑’을 운영했었어요. 지금도 자주 친구를 초대해서 밥 먹고 차도 마셔요. 너무 춥거나 더울 때만 아니면 옥상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요.

(서형) 저는 버리는 거 잘 못 하거든요. 안 좋아하기도 하고. 집이 넓어 좋은 점이 많아요. 창고도 넓거든요. 일단 다 가지고 있다 보면 필요할 때가 생기기도 하고,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현욱) 거실, 그중에서도 이 테이블이요. 여기가 주로 다 같이 모여 노는 곳이에요.

(서형) 저는 책장이요. 그냥 꽂혀있는 것만 봐도 좋아요. 읽게 될 시간이 기대돼서요.


주로 집에선 어떤 자세로 있나요?

(서형) 테이블에 앉아서 일하거나, 침대에서 책 읽거나 거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현욱) 전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진짜 길거든요. 그래서 한 자세로 있을 수가 없어요. 엎드렸다가 앉았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소파에 기대어 앉아요. 주로 스마트폰 해요. 손목이 아플 정도로 많이 해요. 스포츠 경기도 보고, 좋아하는 브랜드 화보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면서.


집에 거의 안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네요.

(현욱) 밖에서 찍은 사진만 SNS에 올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이건 모두에게 공통으로 던진 질문이에요. 밖에서 에너지를 받아와요, 집에서 에너지를 만들어요?

(현욱) 둘 다 인 것 같아요. 밖에서 얻어오기도 하고 집에서 만들기도 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서로 다른 종류인 것 같고요.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해결해요? 집에서 쉬어요, 밖에서 털어요?

(현욱) 집에서 잠깐만 쉬다가 밖에서 좋아하는 사람 만나요. 별 건 안 하더라도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편하게 앉아 얘기하고 나면 털어져요. 고민해서 될 일이 아니라 판단되면 그냥 밀어내요.

(서형) 이 오빠는 부정적인 얘기 남는 것도 싫어해요. 안 좋은 이야기가 오간 카톡방은 ‘나가기’ 해요(웃음). 저는 그렇게 밀어내지 못해요. 안고 고통받는 것 같아요. 일기장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적고, 그것도 모자라서 악몽도 꿔요. 그건 근데 신나는 일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일기장에 쓰고 블로그에 기록하고 신나서 꿈도 꿔요(웃음). 널을 뛰는 감정을 다 가지고 살아요.

(현욱) 서형인 작은 일에도 기분이 크게 변하니까 뒤에 생긴 감정이 앞에 있던 감정을 밀어내요. 속상한 일이나 슬픈 일이 길게 가진 않는 것 같아요.


이걸 물어본 건 회복력을 얘기하고 싶어서였어요. 원하는 방향을 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힘든 일을 겪어도 금방 회복할 수 있대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서형) 오빠한테 물어보세요. 이 오빠 대학교만 세 번 다녔어요.

(현욱) 처음에 영화로 학교에 갔다가, 무역학 전공으로 다른 대학을 갔다가, 여행 다녀와서 간호학을 공부했어요. 간호사로 한동안 일하다가 지금은 건대 입구에서 소 곱창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서형) 이번 코로나 사태 때 경북 지역에 간호사 지원도 갔다 왔어요.


그렇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와요?

(현욱) 과거를 미화하고 싶진 않네요. 용기가 아니라 그냥 포기한 거예요. 영화는 보는 것만 좋아했지 막상 만들면서 오는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어요. 무역학은 어려웠고, 간호사는 힘들었고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믿음이 있어서 이렇게 산 건 아니에요. 포기가 실패라고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에요. 저는 사는 게 재밌거든요. 계속 살고 싶고, 살아갈 건데 불행한 채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걸 계속 찾는 거예요.






지금 운영하는 음식점은 얼마나 하고 있어요?

(현욱) 4년째요.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네요.

(현욱) 버티는 거예요. 시기상 권리금이 무너지고 있어서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이 장소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업종으로 바꾸기에는 인테리어 비용이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이 메뉴를 가지고 잘해보려는 거죠. 가게가 코로나 이전 매출로 돌아가는 게 요즘 목표에요. 상호를 바꾸면서 재료를 리뉴얼했어요.

20대에는 적당히 아르바이트하고 종종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간호대를 다니면서 20대 후반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하는 거예요. 시골 사람이라 결혼을 빨리하거든요. 가족이 생기면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없는 거니까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돈을 벌 궁리를 해야겠더라고요.


어떤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요?

(서형)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치는 편이에요. 출근 시간이 10시라서 일찍 일어나면 회사에 일찍 가거나, 카페에 가서 같이 커피를 마셔요. 저녁엔 운동하거나 책 읽고 친구도 만나고.

(현욱) 약속이 없어도 일찍 일어나긴 해요. 일어나서 가만히 있다가 오후 네 시쯤 가게에 일하러 가요.


매일 꼭 하는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현욱) 저는 하루에 한 번씩은 밖에 나갔다 오려고 해요. 용건이 없어도요.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거나, 마트라도 다녀와요. 집에만 있다 보면 아무 생산적인 활동이 없는 채로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아 허무하더라고요. 코로나로 한참 난리였을 때는 아예 커피도 집에서 내려 마셨어요. 식자재도 주문해서 택배로 받고.


코로나 사태가 둘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현욱) 일로는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그 밖엔 외출이 줄었고요. 집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해요. 지하철이나 기차 타고 멀리 나가는 건 자제해요.

(서형)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등산했었어요. ‘대충산악회’라고 이름까지 지어서 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손두부, 메밀국수 같은 거 먹고. 아직은 모임을 주최하는 게 조심스러워서 모임도 쉬고 있어요.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저는 처음 검사를 했던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ENFP인데, 이 유형 특징이 ‘생존형 인싸’래요. 그동안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환경이었잖아요. 이상하게 그에 대한 압박이 있었어요. 이 열린 가능성을 두고 소극적으로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압박. 약속을 잡아 사람을 만나야 하고, 때때로 전시나 강연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오히려 자유로워요.






둘은 얼마나 만났어요?

(서형) 2년이요.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생각보다 얼마 안 만났네’가 대부분 반응이에요.


어떻게 만났어요?

(현욱) 이건 매번 꼭 설명해요. 클라우프(Clouff)라는 브랜드에서 매달 ‘낭만투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몇 모아서 캠핑을 가요. 장비도 다 그냥 빌려줘요. 대신 신청할 때 자기소개를 낭만을 담아 적어 보내야 해요. 낭만투어에 가면 평소에 접점이 없는 사람들도 만나고, 오글거려서 꺼내기 힘든 낭만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잠깐 멈췄지만, 거기서 만났어요.


아웃도어 활동 좋아하죠? 여행이랑.

(서형) 저는 일하는 거 좋아해요(웃음).

(현욱) 둘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 쉬면 여행이나 캠핑 가고 싶어져요. 원래 꿈이 여행가였어요.


원래라면, 언제부터요?

(현욱) 고등학교 1학년 때쯤 한비야의 여행 책이 엄청나게 유행했어요. 읽었는데 좋더라고요. 그다음에 이시다 유스케의 <가보기 전엔 죽지마라>는 책을 읽고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 미국에서 캐나다 바이크 캠핑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좋았어요.


‘아웃도어 활동이 좋은 이유는 동물로서 유능해지는 기분이 들어서’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처음 만난 곳도 아웃도어인 두 분은 바깥 활동이 왜 좋아요?

(서형) 음. 아웃도어 매거진에서 일하는 동안 계속 그 분야 생각만 하다 보니 좋아진 것 같아요. 좋아해야 해서 좋아하다 보니 좋더라고요.

(현욱) 왜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산으로 캠핑가면 잠깐이라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바이크 캠핑할 땐 뭐가 그렇게 좋았어요?

(현욱) 이동 수단이 매력적이에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움직이며 여행하는 게 좋아요. 뉴욕에서 돈을 벌어 자전거를 사서 그걸 타고 아메리카랑 유럽 대륙, 일본을 여행했어요.


재미있었겠어요.

(현욱) 혼자 계속 여행을 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이제는 혼자 여행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지막 여행 때 생각했어요.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는 게 아쉬워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여행은 장소가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가서 만난 사람을 기억하는 거라고. 그 기억할만한 사람이 계속 옆에 있으면 더 좋잖아요.





서형님은 어때요, 같이 여행하고 싶은 마음인가요?

(서형) 같이면 좋죠. 저도 여행은 아니지만, 외국에 혼자 자주 나가 있었거든요.


일본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서형) 맞아요. 워킹 홀리데이로 갔다가 취업해서 도쿄에 살았어요. 계속 살 생각이었는데.


돌아왔네요?

(서형) 네. 이전에 중국, 베트남, 과테말라, 멕시코 같은 데 잠깐씩 있을 때도 매번 쭉 거기서 살 생각이었어요.


매번 돌아온 거네요?

(서형) 네. 전 앞서 말한 것처럼 ‘ENFP’ 인간의 전형이에요. 뭐 하나 진득하게 못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려요. 문제는 그러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거예요. 단짝 친구보다 두루 친한 게 좋아서 누가 불러도 다 나가요. 책도 열 권씩 빌려서 동시에 들춰보며 읽고, 대학교 입학해서는 동아리를 일곱 개를 가입했어요. 몸은 몸대로 힘들고 정신은 정신대로 산만한데, 실속이 없어요. 이렇게 살기 싫었어요. 다 그만두고 아예 언어도 못 알아듣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중국에 유학을 갔는데 한국에서 삶과 아예 똑같았어요. 태권도 동아리 등록하고, 언니 오빠들 따라 몰려다니고. 그다음엔 베트남에 갔어요. 베트남 사람한테 한국어 가르치고, 한국 사람한테 영어 가르치고, 아이한테는 동화책 읽어주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이랑 친구 하느라 또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은 더 멀리 간 건가요?

(서형) 최대한 멀리 간 거예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오빠 말대로 그냥 도피인데, 어떻게든 새로 살아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과테말라와 멕시코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는데 또 똑같더라고요. 언어 배우고, 운동 다니고, 친구 만나고.


그다음에 또 일본에 갔어요.

(서형)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했어요. 여기서 새 인생을 살겠다! 외치며. 한인 타운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일본어를 배워서 회사에 취업했어요. 5년 짜리 비자도 받았어요. 회사 가고, 주말에는 한인 타운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친구 만나고, 운동 가고, 책은 여전히 많이씩 빌려 읽고. 돌아보니 그렇게 피하고 싶던 삶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속 살고 있는 거에요. 아주 질려버렸죠. 도망 다닐 게 아니라 이런 내 성격으로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매거진 에디터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트렌드도 궁금해하고, 일도 벌이고 그런 게 미덕일 것 같았어요. 마침 <대학내일> 공채가 떴길래 회사를 그만두고 귀국했어요.


그렇게 에디터가 됐나요?

(서형) 아니요. 그 잡지엔 면접 기회도 받지 못했어요(웃음). 그래도 결국, 에디터가 됐고, 매우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어요. 종종 불안할 때가 있어요. 내가 또 질려 할까 봐,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정말 질려요.








헤매던 둘이 잘 만난 느낌이에요. 여행 메이트로서 상대의 장점을 하나씩 얘기해주세요.

(서형) 여행 가기 전에 계획 짜는 게 설레기도 하지만 아주 귀찮은 작업이잖아요. 교통편도 알아봐야 하고 예약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서 평도 찾아 읽어야 하고. 오빠는 그걸 매번 아주 꼼꼼하게 잘해요. 오빠가 찾은 루트로 신나게 놀고 오면 미안해서 다음엔 꼭 내가 계획 짜야지, 하는데 잘 안 돼요. 찾아보기 힘들어서 먼저 어디 가자고 잘 안 해요. 말하다 보니 미안하네요(웃음).

(현욱) 서형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을 표현 안 해요. 전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얘라고 짜증 나는 게 없겠어요? 옆에 있는 사람 마음 불편하지 않게 하는 거잖아요. 그게 장점이에요.

(서형) 내가 계획 짤 때 아무것도 안 한 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예요. 제 발 저리는 거지.


아까 의식주에 다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옷 좋아하지 않나요?

(서형) 그냥 사람처럼만 입으려 해요. 어려워서 아침마다 ‘뭐입지옥’이에요. 아, 오늘은 또 뭐 입지? 입고 나선 오빠한테 물어봐요, 이렇게 입는 거 이상해?


현욱님은 평소 어떻게 옷을 입어요?

(현욱) 아웃도어 스타일을 기반으로 유행을 따라가는 정도 같은데요.


빈티지도 좋아하죠?

(현욱) 빈티지 제품에서 느껴지는 색감을 좋아해요. 요즘 옷에는 안 쓰는 색감을 쓰잖아요.


관심 있게 보는 브랜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현욱) 요새 브랜드 로키마운틴페더배드(Rocky Mountain Featherbed)에 꽂혀 있어요. 빈티지를 복각한 브랜드인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조금씩 형태를 바꾸고 소재도 바꿔서 매년 다른 게 나와요. 그래서 안 질려요. 매장 사람들 코디를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데, 되게 멋있어요. 그냥 멋쟁이가 아니라 편안하고 좋아 보이는, 그런 멋이 나요.

(서형) 원래 가격이 되게 비싼데 할인받아 사려다 매번 실패해요.

(현욱) 가치와 가격은 어쨌든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싼 건 싫고, 비싼 물건은 사기가 어렵잖아요. 전 비싼 제품을 할인받아서 저렴하게 사는 게 좋아요.

(서형) 오빠는 살에 닿는 느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값이 나가는 제품을 좀 신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욱) 엄마가 이불 가게를 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이불 덮어서 그런지 이불에 보푸라기 나면 그게 그렇게 싫어요. 바로 버려요. 전 오로지 면 100% 이불. 극세사 같은 것도 싫어요. 옷도 외투 빼고는 면 소재가 좋아요.






음악은요?

(서형) 저는 여름에도 캐롤 들어요. 일할 때는 해리포터 ASMR 듣고. 안 찾아 먹는 것처럼 음악도 별로 안 찾아 들어요. 누가 어떤 음악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보통 안 듣는다고 답해요.


왜요?

(서형) 그 질문으로 상대를 파악하려는 사람에게 파악되고 싶지 않아서요(웃음).

(현욱) 얘 스윙스 좋아해요. 그래서 말 안 하는 거에요.

(서형) 맞아요. 힙찔이에요. 중고등학교 때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들었고, 쇼미더머니도 다 챙겨 보고, 대학교 와서는 래퍼 제이켠한테 수업도 들었어요(웃음). 예, 저 스윙스도 좋아합니다.

(현욱) 저는 지소울 노래 좋아해요. 멜로디가 좋아서요.


현욱님은 어떤 학생이었어요?

(현욱) 조용한 학생이요. 만화책만 읽었어요.


만화가 왜 좋았어요?

(현욱) 터무니없어서요.


생각나는 만화 있으면 알려주세요.

(현욱) <멋진 남자 김태랑>. 남자다운 컨셉으로 모든 걸 해결해요. 어이가 없어서 기억이 나네요.


묻다 보니 재밌네요. 영화는요?

(현욱) 프랑스 코미디 영화 좋아해요. 프랑스라서 좋은 건 아니고, ‘병맛’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그 나라가 그런 장르를 잘 만들더라고요.

(서형)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보는 동안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요. 누가 추천해주면 보려고 하긴 해요.





인복이 있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현욱) 전에는 제가 인복이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요. 해 준 만큼 돌아온다고도 생각 안 해요. 내가 누구에게 뭘 줘도 잘 기억 안 하고, 남들이 준 것도 잘 기억 못 해요. 칭찬하면 고맙게 받고, 누가 선물 주면 잘 쓰고, 그뿐이에요.

(서형) 저도 그 단어를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예전에 어떤 잡지 편집장님 북 토크를 들은 적이 있어요. Q&A 시간이 있었는데, 뭘 물어도 ‘제가 인복이 좋아서’ 라 답하더라고요. 겸손하려고 그런 거겠지만, 당시 취준생인 저에게는 도움이 하나도 안됐어요. 그 사람만 타고난 것 같고, 혜택받은 것 같고.

‘운’이나 ‘복’ 말고 좀 더 말이 되는 게 있지 않을까요. 평소 호시탐탐 노렸으니까 기회가 온 거예요. 그걸 그냥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 뭔가 남다른 노력을 했을 거에요. 올 만 해서 온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와 글 | 조서형 에디터 필름 사진과 손글씨 | 김지욱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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