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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결을 타고 가을로 가자



강릉에 사는 작가 김나훔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작년엔 편집숍을 열었다. 조정 경기에서 노 젓기를 멈추는 구령을 따다가 ‘오어즈'라 이름 지었다. 그 이름처럼 그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온몸으로 가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그와 한배를 탄 아내는 ‘보트하우스' 에 산다. 긴 공사를 마친 보트하우스에 OU가 초대를 받았다. 집이 멋지다는 칭찬에 김나훔은 거듭 날씨가 좋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부부는 마당에 열린 감을 따다 곶감을 말리고, 부엌에도 가득 담아뒀다. 집에 가을이 쏟아져 들어왔다.


김나훔, @nahumkim







 





인터뷰를 이미 많이 해왔더라고요. 섭외 연락이 귀찮지는 않았나요?

한동안 내가 뭐라고 떠드나, 싶어서 인터뷰를 안 하긴 했어요. 정성 담아 보내주신 메일에 마음이 바뀌기도 했고, 워낙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귀찮지 않았어요. 인터뷰하면 생각도 정리되고, 그 시점의 제가 기록으로 남으니까 좋더라고요. 집 정리도 한 번 하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래도 같은 얘기를 또 하는 피곤함 방지를 위해, 조사해온 자료를 먼저 확인할게요. 속초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전공은 제과제빵.

맞습니다. 꽤 앞부분에서 시작하네요.


졸업하고 충무로의 인쇄소로 취업을 했어요.

연이어 아르바이트 낙방을 하고 풀 죽어있던 참이었어요. 누가 인쇄 일 해보겠냐고 물어보길래, 일단 시작했어요. 잘 맞아서 인쇄소에서 7년 정도 일을 했어요. 퇴근하고 투잡으로 그림을 그리면서요.


한참 일러스트레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서른 살에 독일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탔어요.

네. 막차 맞아요.







베를린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강릉으로 이사를 했어요. 작가님도 어머니를 따라 강릉으로 왔고요.

워킹홀리데이 중간에 어머니를 뵈러 잠깐 귀국해 강릉에 온 적이 있어요. 경포호수를 산책하는데, 햇살이 반짝반짝하더라고요. 엄청 예뻤어요. 여기 하늘을 보면서 살고 싶더라고요. 그때 다음 스텝을 강릉으로 결정했죠.


오, 방금 좀 소설 같았어요. 소설책 보면 그날의 날씨, 계절, 주변 분위기가 다음 사건을 암시하잖아요. 햇볕이 작가님에게 좋은 상상을 하게 했나 봐요?

경포호수에 비춘 햇살을 보는데 ‘그냥 여기면 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베를린에 가기 전에는 제가 쭉 반지하에 누나랑 살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지하철 타고 인쇄소에 가고요. 충무로는 높은 건물 사이에 좁은 골목이 많아 종일 해 볼 일이 잘 없어요. 퇴근하면 다시 지하철을 타고 반지하 방으로 돌아와요.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지쳐서 도피하듯 베를린에 갔어요. 그때서야 알았어요. 제가 몇 년을 두더지처럼 살았다는 걸.





베를린이었던 이유는 뭐예요?

우울증이 왔어요. 그런 괴로움은 처음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여기서 멀고, 물가가 싼 곳을 찾았어요. 죽으러 간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연락도 안 하고 사라져서 나중에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그땐 다른 수가 없었어요.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관계도 속수무책으로 흐트러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살아야 우정도 있고 사랑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없으면 다음은 없는 거니까, 저만 생각했어요.


베를린에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처음엔 주변을 걸으면서 죽을 만한 데를 찾아봤어요. 한 번은 강을 내려다보고 여기서 떨어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독일 사람은 기술도 좋고 덩치도 크니까 금방 저를 건져 올릴 것 같더라고요. (웃음) 그러다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계절의 힘이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엄청난 생명력으로 추위를 뚫고 초록빛이 곳곳에 움트는데 같이 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베를린의 겨울은 해가 거의 안 난다고 들었어요. 힘든 계절을 잘 건넜네요.

해가 귀하니까 봄이 오면 사람들이 벗고 밖으로 나와요. 그렇게 아무 데나 드러누워서 온몸으로 빛을 받아요. 처음엔 오버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알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햇볕을 쬐는 게 얼마나 달콤한 일인지. 그때 나도 스스로 물을 주고 빛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릉에 살기로 한 건 그때 어머니와 본 경포호수에 비친 햇볕, 그게 진짜 전부였어요.


어머니가 강릉 분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강릉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강릉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저희가 속초에 살 때도 강릉에서 살고 싶어 했어요. 속초가 관광지 느낌이라면 강릉은 더 주거용 대도시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어머니도 강릉에 무작정 왔어요. 워낙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분이라 어딜 가도 금방 먹고 살 궁리를 해요. 강릉에도 금방 자리를 잡으셨어요. 지금은 혼자 ‘모락모락’이라는 팥죽 가게를 하고 있어요.








김나훔의 어머니는 강릉시 포남동의 작은 가게에서 팥죽을 쑤어 판다. 가게 이름은 어머니 모 자에 즐길락 자를 써서 지었고 나훔의 아내가 로고와 간판, 메뉴를 디자인했다. 메뉴는 단팥죽, 단호박죽, 들깨죽, 셋뿐이며, 여름이면 팥빙수도 판다. 단팥죽을 한 그릇씩 주문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팥죽에 노오란 단호박 퓌레와 말린 대추가 올라가 있었다. 얼른 떠서 입에 넣으니 과연 고소하고 풍미가 좋았다.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 강릉을 선택한 줄 알았어요.

반대예요. 어머니가 강릉에 있어서 오히려 고민했어요. 10년 넘게 떨어져 지내면서 각자 스타일이 생겼는데, 다시 가까이 살면 부딪히지 않을까?


어떻던가요?

각자 따로 살고 있고 자주 만나지도 않아서 괜찮아요. 지금은 여동생도 강릉에 살고 있어요. 어쩌다 어머니가 김치 나눔 하니까 들르라고 문자 보내면, 가서 밥 나눠 먹고 그래요. 아주 가끔요.


누나도 있다고 했죠? 누나가 부러워하겠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어 강릉 이주는 어렵지만, 마음은 있는 것 같아요. 명절에 만날 때마다 제가 프리랜서로 전향하라고 누나한테 바람 넣고 있어요. 누나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거든요. 어머니를 시작으로 저, 여동생, 아내가 강릉으로 줄줄이 넘어왔어요.


아내는 어떻게 설득했나요?

아내가 황당했을 거예요. 사귀던 애가 갑자기 베를린에 1년간 나가더니, 돌아와서는 강릉으로 간다고 하니까요. 저를 보러 강릉을 몇 번 왔는데, 그때 아내 눈에도 강원도가 괜찮아 보였나 봐요. 실제로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 많은 기획자, 디자이너들이 강릉으로 이주했어요. 아내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을 오히려 강릉에서 만나게 되는 일도 있었어요. 편집숍 ‘오어즈’를 오픈하고는 본격적으로 아내도 강릉 주민이 되었죠. 지금은 장모님, 장인어른도 강릉 이주를 고민 중이에요. 지인 중에도 강릉 매물 좀 봐달라는 사람이 요즘 많아요.


작가님의 강릉에서의 삶이 많은 사람에게 어필이 되었나 보네요.

결혼 전에는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자도 괜찮았어요. 체면 차릴 일이 없었는데, 둘이 되고 나서는 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주변에 걱정을 끼치진 말아야겠더라고요. 제가 강릉을 어필했다기보다 집값의 영향이 크죠. 서울에서는 집이 너무 비싸서 자기 노동과 벌이로 거취를 정할 수 없잖아요. 강릉은 노력하면 가능하거든요. 서울과 가까우면서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어서 다들 눈을 돌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편집숍을 할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창고가 필요해서 세가 저렴한 곳을 찾았어요. 그림 보관을 위해 냉난방기를 들이고 나니까 지출이 커졌어요. 돈을 좀 벌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갤러리 숍처럼 판매를 같이하다가 아내가 디자인 소품이랑 와인을 팔면서 편집숍이 되었어요. 지금도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편집숍 ‘오어즈’ 이름은 노 젓기를 멈추라는 구령에서 따 왔다고 들었어요. 인제 보니 집 이름도 ‘보트하우스’네요.

저랑 아내가 배에 꽂혀 있어요. 청첩장에도 배 그림을 그려 넣었어요. 둘이 한 배를 타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아서요.


왜 배에 꽂힌 거예요?

한동안 안정을 갈구하던 때가 있었어요. 인생은 불안정한 모험이라는 걸 모르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안정에 도달할 거로 생각했죠. 사실은 아니잖아요. 어디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계속 흔들릴 거라고 불안을 인정한 순간 행복이 찾아왔어요. 엄청나게 잘 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안 될 일도 없으니 파도 타듯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배에 탄 것처럼 물이 잔잔할 때는 노를 내려놓고 쉬다가, 큰 파도가 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모험을 하자고요. 그래서 집도, 가게도 배에 비유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물이 어떤가요? 편안해 보여요.

요새 잠잠한 편이에요.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곧 큰 물살이 오지 않을까 불안하네요. (웃음) 파도가 오더라도 그걸 부수고 극복하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주진 않을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박살 나더라고요.









작가님이 SNS에 쓴 글 중에 ‘삶은 징징의 연속이다’라는 얘기를 봤어요. 저 정말 공감해요.

엥. 그게 어디에 있었죠? 제가 한 말이 맞나요?


네. 저 캡처도 해놨어요. (웃음) 살면서 크게 방향 전환을 한 사람도 이야기는 다 다르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계속 꿈꾸다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피하다 보니 새로운 길을 찾은 경우도 있어요. 작가님은 어느 쪽이에요? 연속적 징징 덕에 내가 싫어하는 일을 알고 그걸 피한 후자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하기 싫은 과목이 많았어요. 하고 싶은 건 적었고요. 주말만 기다리는 학생이었어요. 못하는 건 하기 싫으니까 피해 다니면서요. 나는 왜 이렇게 모자랄까, 걱정했어요. 뭐든 다 잘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 그렇지 못하다 보니 저한테 딱 맞는 일을 찾느라 길을 돌아온 것 같아요.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희 누나요. 엄청 성실한 타입이라 같이 살 때 잔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이것도 잘해야 하고, 저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그땐 이것도 저것도 잘 못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컸어요. 지나고 보니 누나랑 저는 그저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누나가 진득하다면 저는 여리고 감정 기복도 커요. 예전에 이 성격을 고치고 극복하려 노력하느라 힘에 겨웠는데, 이젠 잘 길들여서 나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20대 때 어찌나 주변 얘기에 얽매여 늙은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 구속에서 벗어난 요즘은 오히려 젊어진 기분이에요.


비교하지 말고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머리로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잘 안 돼요.

저도 어려웠어요. 스스로 부적응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거든요. 예전 저처럼 생각에 갇힌 친구들에게 지금의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일률적이고 대안이 없어 보이는 시대지만, 이런 삶도 있으니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보라고요. 저런 애도 있군, 하고 아는 게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튜브 하면 어때요?

시작을 못 하고 있지만, 아내랑 4년째 계획 중이에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제가 설교를 하고 싶다거나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건 아니에요. 20대 초반 열정 가득 어린 꿈돌이 시절만 해도 저 막 고향 친구들한테 강원도를 벗어나라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잘 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정신 차리고 기회를 찾아가자고요.(웃음)


아, 사과 해야겠네요.(웃음)

만날 때마다 사과해요. 지나고 보니 여기가 정말 좋더라. 드넓은 자연이 너희 아이들을 품어주는 바로 이곳이 좋은 곳이다, 라고요.


베를린 가기 전 작업물을 보면 유머와 위로 코드가 되게 잘 얽혀 있어요. 그걸 보면서 작가님은 주변 관찰을 잘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나와 여동생 사이의 남자 형제로서의 눈치 코드가 훈련된 걸까요?

아, 에디터님도 둘째예요?


아니요. 저는 여동생만 있어요.

눈치 보는 기분을 어떻게 알았죠? 이건 첫째도 셋째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에요. 귀염 받는 막내아들도 아니고, 그저 다른 성별 형제 사이에 낀 둘째 거든요. 기 센 둘 사이에서 크다 보니 제가 분위기 파악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아니, 근데 여기가 어디죠? 대화가 어디로 가고 있죠?






길을 잃을 수 있다. 길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가 대화의 한 가운데서 갑자기 길을 잃은 것처럼, 계획했던 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길이 없어질 수 있냐고 화를 내거나, 내가 뭘 잘못해서 길을 잃었는지 자책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의지를 잃어본 사람답게 고작 길을 잃었다고 당황하지 않는다. 눈썹을 한껏 눕혀가며 큰 소리로 웃을 뿐이다. “여기가 어디죠" 능청스레 묻고 묻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혹시 강릉에서 다시 길을 잃더라도 그는 아마 놀라거나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다른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길을 지금처럼 호쾌하게 걸어 나가겠지.




빵은 이제 안 만드나요?

제빵 얘기를 하자면 빵 만들어 달라고 할까 봐 부담스러운데요. (웃음) 제빵을 잘 못 해요. 잘했으면 진로를 안 바꿨을 거예요. 그때도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견고한 프레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대형 베이커리가 옳고, 정답에 가까운 빵을 구우려고 했어요. 성공이란 고생스러운 제작 과정에 정확한 레시피를 거쳐 맛과 모양이 일정해야 하는 줄만 알았어요.


다시 빵을 만든다면 지금은 어떤 빵이 나올까요?

메뉴도, 모양도 다양하게, 재밌는 빵을 만들어 볼 것 같아요. 디자인적으로 풀어 볼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개성 있는 작은 동네 빵집들 인기 많잖아요. 돌아보면 제빵이라는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제 태도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지금 그림 그리는 마음으로 빵을 만들었으면 즐겁게 잘 할 수 있었겠죠?


지금 그림 그리는 마음은 어떤데요?

그냥… 음… 좋아요! 그림 그리는 작업도, 사진 찍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다 마음이 원해서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면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예전엔 방향 설정이 안 되어 있는 게 고민이었거든요. 이젠 그냥 그때그때 흐르는 제 감정을 표현해요. 안 해본 게 있으면 해보고, 흥미가 생기면 그 작업도 해보고, 해보고 나서 후회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경포호수 산책 자주 하나요?

가게가 생기면서 빈도가 줄긴 했어요. 그래도 하늘을 보고 ‘지금이다!’ 싶을 때 바로 쏴요. 10분이면 닿으니까요. 서울에서는 해가 길든 짧든 저에게 별 영향이 없었어요. 지금은 하늘을 보고 사니까 달라요.


어떤 게 달라졌나요?

여름이 되게 좋단 걸 알게 됐어요. 퇴근하고 나서도 해가 안 지니까 한동안 여섯 시 이후에 하늘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아내랑 퇴근하고 바닷가에서 저녁거리 사다가 차에서 먹으면 엄청 좋아요. 바다, 구름 이런 거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아요.

작가님은 무슨 음식 좋아해요?

먹는 걸 다 좋아해요. 새로운 음식이나 안 먹어본 조합 시도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우울증 걸려서 살이 쭉 빠졌을 때, 가족이 모여서 긴급회의를 했대요. 먹는 거 그렇게 좋아하는 애가 먹지를 않는다고. 그만큼 먹는 걸 좋아해요. 아내랑 저랑은 요새 강릉 리스트를 만들고 있어요.

리스트라면 맛집 리스트인가요?

맛집, 카페도 있고, 그냥 장소도 있어요. 어디 바닷가, 무슨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좋은 곳까지 담긴 리스트요. 놀러 온 사람한테 공유도 해주고 저희도 보고요. 아내는 만드는 걸 놀이처럼 생각해요. 집들이하면 포스터 만들고, 아, 원래 집에 오는 사람 입장 팔찌도 채워주는데.

큰 도시를 벗어나 살면 동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거란 로망이 있어요.

강릉이 신기하게 좁아요.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면 만나게 되어 있어요. 굳이 강릉에 있는 이유가 각자 있으니까, 대화하다 보면 공감도 되고 남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요.


주변 사장님들과 자주 만나나요?

자주 만나진 못해요. 강릉엔 큰 회사가 없으니까 자영업자가 많잖아요. 다들 휴무가 비슷해요. 주말에 일하고 월, 화 쉬어요. 저희끼리 운명의 평행선이라고 부르는데, 가보고 싶은 가게는 많지만, 영업시간이 겹쳐서 갈 수가 없어요. 자주 만나지 못해도 공감과 소통은 늘 이어지고 있어요.







작가님 SNS에서 봤던 문장 중에 좋았던 거 또 있어요. ‘자잘한 행복을 주워 담다 보면 이게 인생인가 싶다’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많은 얘기를 적어놨네요. (웃음)

뭘 줍는 모습이 떠올라서 지금 이 계절에 잘 어울려요. 요즘 강릉에서는 어떤 행복을 주워 담고 있나요?

감을 정말 많이 주워 담고 있어요. 이사하고 보니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데, 알고 보니 단감이랑 대봉감 나무가 각각 있더라고요. 홍시는 따다가 부엌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까먹고요, 단감은 껍질을 깎아서 밖에 말리고 있어요. 곶감을 만들어 보려고요. 한때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었는데, 요새는 잎사귀 색 변하는 거 보는 재미로 지내요.


가을이 참 이상한 계절이죠.

잊히는 것을 생각하는 동시에 다음을 기약하는 느낌도 있어 재밌어요. 어머니들 프로필 사진에 꽃 사진, 단풍 사진 올려놓은 것처럼 저도 자꾸 자연이 눈에 들어와요. 다들 다르게 예쁘고, 다른 의미로 경이로워요. 그걸 사진으로 남기면 더 오래 마음에 닿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엄청 열심히 찍어요.






사진은 뭐로 찍어요?

무겁고 큰 카메라 들고 다녀요.


그러면 길을 걷다 우연히 본 걸 찍기가 어렵지 않나요?

그 무거운 카메라를 맨날 메고 다녀요. 우연히 뭔가를 보게 될까 봐요. 아내가 어깨에 안 좋으니 필요할 때만 가지고 나가라고 하는데 그렇게 안 돼요. 강릉은 높은 건물이 없으니까 달만 떠도 예쁘거든요. 카메라를 안 가지고 나온 날에 엄청 커다랗고 붉고 멋진 달이 떠 있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언제 무엇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메고 다녀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 이름 뜻이 되게 좋던데요. 다른 인터뷰에서 얘기해준 거 봤어요.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이름에서 따왔어요. 나훔은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요새 가장 작가님께 위로가 되는 것은 뭐예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날씨요. 햇살도 여전히 제게 위로가 되고, 길에 옷 갈아입는 나무들도, 하늘도 위로가 돼요. 놓치고 있던 걸 발견하는 순간이 다 좋아요. 테이블에 꽂아 둔 이 꽃은 옆 식물 가게에서 받은 건데 이름도 처음 들어봤어요. 꽃 이름이랑 특징을 듣는데, ‘아, 아직 알아야 하는 게 많이 남았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아이가 될 여지가 남은 것 같아 신나더라고요.


아내와 보내는 시간도 좋아 보여요.

아내랑 노닥거리는 시간이 정말 큰 위로고 힘이에요. 집에서 둘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떠들면서 서로 ‘너 진짜 웃기다’고 얘기해요. 아내가 진짜 골 때리거든요. 역시 결혼은 골 때리는 사람이랑 해야 하나 봐요. 툭 던진 농담을 곱씹으며 온종일 웃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나면 또 웃어요. 그런 게 다 위로가 돼요.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홍두리 포토그래퍼




 




Super Life in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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