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은 분주한 오전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두 아이를 등원 보내고, 자수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집이 지저분하다며 걱정했다. 이것도 치웠어야 했고, 저것도 정리하려 했다고. 우리가 너무 일찍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의 공간이 가진 멋은 더 치우거나 덜 치운다고 가려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감출 수 없는 사랑하는 마음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아름다웠다. 이 사실은 강민정 자신도 알고 있는 듯했다.
강민정, @kang.min.jeong
집에 꽃이 많네요.
강릉 꽃 농원에서 수확한 꽃이에요. 며칠 전 행사 때 한 다발에 삼천 원씩 팔고 남은 걸 가져왔어요.
인스타그램으로 보니 강릉의 모든 행사에 민정 님이 있더라고요. 어떤 분일지 궁금했어요.
주부예요. 그냥 주부. 한 번은 행사에서 누가 제 소개를 해준 적이 있어요. 이 사람은 강릉에서 자수하고, 전시도 하고, 문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라며 장황하게 소개하다가 마지막에 직업은 주부라고 덧붙이더라고요. (웃음) 직업은 주부입니다.
앞에 뭐라도 붙어야 할 것 같아요. 두 글자로 끝내기엔 아쉬운데요.
음. 강릉 자수를 하고 강릉 문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리랜서이자 주부, 이건 어떨까요? 직업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부르면 다닐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주 참여할수록 연락이 더 많이 와요. ‘이런 거 있는 데 할래?’, ‘여기 같이 갈래?’
힘들 때는 없나요? 벅차거나.
아니요.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가요. (웃음)
그러고 보니 우리 인터뷰도 그랬어요.
‘네, 할게요!’ 그랬죠. 대답해 놓고 걱정은 했어요. 괜히 한다고 했나, 각이 아닌 것 같은데 캄서.
원래 강릉 사람이 아닌가 봐요. 다른 지역의 사투리가 느껴져요.
네. 고향은 경북 영천이에요. 대구 옆에 있어요. 대학교를 삼척에서 다니고 2015년에 결혼하면서 강릉에 정착했어요. 이듬해 큰아들 명섭이를 낳고 그다음에 둘째 효섭이를 가졌어요.
아이들 이름이 귀엽네요.
효섭이는 아버님이 역학책 보고 획 계산해가며 고민 끝에 지어 주셨어요. 마음에 쏙 들어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흔한 이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것 같아요.
강릉은 남편 고향인가요?
아버님, 어머님 고향이 강릉이에요. 남편은 동해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 여기로 이사 왔대요. 가족, 형제, 친구들이 모두 강릉에 있으니 거의 고향이라 할 수 있죠.
민정 님 식구들은 모두 경북에 있고요?
네. 남편처럼 가족, 친구들과 같은 도시에 있으면 좋겠다 부러울 때도 있는데, 없으니 이만큼 자유롭게 사는 거지 싶기도 해요.
남편은 어떻게 만났어요?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저는 목공, 신랑은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침실의 전등이 신랑 졸업 작품이에요. 부엌의 수많은 나무 도마는 제가 만든 거고요. 졸업하고 일하던 공방 바로 위층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건물이 통째로 팔리면서 일과 집을 동시에 잃었어요. 다행히 집 주인이 바로 근처에 이 집을 지어줬어요. 마당이 있어 아이들이 편하게 뛰어놀고 방도 넓은 집에서 살고 있네요.
와, 그런 일도 있군요.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자기가 만든 운이던데요.
그런가요. 저는 정말로 흘러 흘러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사람 만나고 사건이 생기고 삶이 흘러가는 걸 저는 그냥 바라볼 뿐이에요. 그게 좋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남편은 무슨 일 해요?
건설 현장에서 기계 정비 사업체를 운영해요. 자기 회사를 차릴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결혼할 무렵에 일하던 데가 망했어요. 돈은 벌어야 하니까 회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동업자가 있었는데 다치면서 지금은 혼자서 사무 일부터 주문 넣고, 발주하고, 정비 나가는 모든 걸 다 해요. 일을 꽤 잘해서 의뢰도 많이 와요. 부지런히 운영하고 있어요.
집 안을 디자인하는 일을 공부하셨는데, 집 밖을 짓는 일을 하고 있네요. 손이 야무진가 봐요.
대학교 4학년 때 제가 졸업 작품을 만들 수 없을 만큼 다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디자인한 걸 신랑이 제작해줬어요. 남편은 졸업 전시를 두 번 한 셈이죠. 보면 손이 야무져서 마감을 깔끔하게 해요. 마감을 잘하는 게 제작을 잘하는 거로 생각하거든요.
잘한 마감은 어디서 티가 나나요?
예를 들어서 남편이 풀을 붙여서 부품을 연결하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깨끗해요. 제가 붙이면 풀이 밖으로 찍 나와 있고, 그게 마르면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러거든요. (웃음)
아이들도 두 분의 센스와 손재주를 닮았나 봐요. 냉장고에 붙은 사마귀 그림 보고 멋있어서 놀랐어요.
기차가 더 잘 그린 것 같지 않나요?
그 옆에 꽃 들고 있는 여자도 귀여워요.
이건 명섭이가 꽃을 팔러 가는 저를 그린 거에요. 밀짚모자 위 리본까지 깨알같이 표현했어요.
밀짚모자가 민정 님의 시그니처 같던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행사에서 누가 사줬는데, 꽃 팔러 다닐 때마다 써요.
하루 한 개 이상 행사를 다니는 것 같아요. 1.5개쯤 다니나요?
제가 생각해도 진짜 많이 다녀요. 같은 공간이라도 전시가 계속 바뀌잖아요. 한 번 보는 거랑 두 번 보는 기분이 또 다르고. 그러니까 지나가다 그냥 들러보는 거예요. 수목원 가는 길에 시립 미술관 들르고, 전시 보러 가는 길에 행사도 가고.
부지런하네요.
아니에요. 그냥 좋아하는 데만 다니는 건데요 뭘. 제가 새로운 그림, 새로 알게 된 작가님, 공방 사진을 계속 인스타그램에 올리니까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걸 빨리 찾아내는 게 부지런한 거 아닐까요?
강릉에 워낙 문화, 예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새로 작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작가님과 친해지기도 해요. 제가 뭘 좋아하면 깊이 파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림 한 장에도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상상하면서 작품에 깊이를 더하다 보면 흥미가 커져서 계속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바닷가에서 운동도 하던데요.
요가를 했었어요. 강릉에 ‘파란 요가’라고 무료 수업해주시는 분이 있거든요. 바닷가에서도 하고 솔숲에서도 하고. 날이 추워지고 못 나가고 있는데 참 좋았어요.
민정은 자기가 즐기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강릉의 모든 것이 스타일 실현을 위한 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원을 잇는 활동과 팀이 만들어지고 작품과 서비스로도 태어났다. 민정이 찾은 강릉은 다시 민정을 만들었다.
요즘은 아이들 그림에 깊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맞아요. 아이들 그림을 정말 좋아해요. 너무 쌓여서 걱정이긴 한데 못 버리겠어요. 종종 “명섭아, 이거 모아서 엄마 전시해도 돼?” 물어보기도 해요. 한 장 한 장이 참 소중해요.
아이 그림을 이렇게까지 많이 붙여놓은 집은 처음이에요. 따뜻해요.
잘 보면 시리즈가 있어요. 아이가 꽃만 계속 그릴 때가 있고, 같이 산에 다녀오면 도토리랑 벌레를 한창 그리고, 로봇만 그릴 때도 있어요. 네모, 네모, 또 네모가 겹쳐 온갖 희한한 로봇이 한동안 집에 무한 증식하죠. 아이들은 생각나면 하루에 열 장씩도 그리니까 다 가지고 있진 못하고 나름 골라서 붙인 거예요.
아이들이 나중에 보면 정말 기분 좋겠어요. 엄마가 이렇게 자기 그림을 사랑해준 걸 알면.
아이들은 어떤 목적이나 생각으로 그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순수함이 좋아요. 보고, 듣고, 느낀 뭔가를 표현하려 움직인 게 사랑스러워요. 지금처럼 뭔가가 빠지고 배제된 단순하고 이상한 느낌이 귀엽고 좋아요. 여기서 더 잘 그리게 되면 별로 안 귀여울 것 같기도 하네요.
일과가 궁금해요.
오전은 주부 일상이에요. 남편이 몸을 쓰는 일을 하니까 아침엔 되도록 밥을 지어 먹여요. 남편 출근하고 명섭이, 효섭이 차례로 등원 보내고, 화분 밖에 꺼내놓고 물 주고, 아침이 빡빡하죠. 다들 아침은 바쁘잖아요. 그러고서 한숨 돌려요. 그다음에는 요일에 따라 자수를 배우러 가거나 가르치러 가요. 오후에는 금방 아이들이 하원 해요. 그래서 집이 엉망일 때가 많아요.
자수를 배우기도, 가르치기도 해요?
네. 월, 수요일에는 강릉 문화원에서 하는 초등학생 수업, 화요일에는 옥청동의 도시 문화 재생 수업을 나가요. 바늘에 실도 끼워주고 매듭도 지어주면서 강릉 자수를 즐겁게 알려주고 있어요.
듣는 자수 수업은 뭐에요?
새로운 기법이나 프랑스 자수요. 오늘은 입체 자수 수업을 듣고 왔는데, 두툼한 실로 하니까 금방금방 만들어지더라고요. 재밌었어요.
열정 부자예요. 그러다가 또 마켓 있으면 나가고요?
최근에 유난히 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달력이 북적북적하죠.
강릉 자수 문양이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사실적이고 섬세한 우리나라 전통 자수랑 다르게 강릉 자수는 단순하고 추상적이에요. 새를 한 마리 그려도 강릉 자수는 뭉툭하고 독창적이에요. 이거 한번 볼래요? 무슨 모양 같아요?
뱀? 버섯?
닻이에요. 강릉은 바다랑 접해 있으니까 예로부터 가족 중 누군가는 배를 타고 일을 하러 나가 있잖아요. 닻은 바다 사람이 집에 돌아왔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배가 떠내려가지 않고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돕는 장치기도 해요. 당시엔 어부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이런 수를 많이 놓았대요. 자체가 부적 같은 거예요. 강릉 누비 역시 비슷한 개념이에요. 안에 들어간 게 뭐 같아요?
보통 솜이 들어가지 않나요?
강릉은 특이하게 종이 심지를 넣어 누비를 만들어요. 이유가 있어요. 배 위의 습한 기운을 한지가 막아 눅눅해지지 않게 한대요. 바다에 있는 동안엔 생사도 알 수 없지만, 사랑과 정성을 담아 전한 거죠.
이 책 한 권 사 봐야겠어요.
강릉 자수 박물관 안영갑 관장님이 만든 책인데, 지금은 아마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품절인가요?
강릉 자수 박물관이 문을 닫았어요. 시에서 나가라고 해서요. 그때 ‘강릉 자수 알리미’라고 제품 만들어서 텀블벅도 열고 서명 운동도 다니고 그랬어요.. 방에 자료가 더 많아요.
방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정신이 좀 없을 거에요. 제가 뭘 잘 못 버리거든요.
모은 물건 소개 좀 해주세요.
강릉에 있는 작가님 작품들이 대부분이에요. 저한테는 작가님들이 정말 소중해요. 행사 다니면서 정말 좋아하는 마음에 인사도 먼저 건네고 작품 얘기도 먼저 해요.
뭐라고 얘기해요?
안녕하세요. 저 강민정이라고 하는데요. 작가님 작품 좋아해요. (웃음) 그냥 그렇게 아는 척하고 다녀요.
이 에너지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서 왔는데, 여전히 궁금해요.
예쁜 걸 보면 에너지가 생겨요. 이 방에 있는 예쁜 것들 좀 보여줄까요? ‘유리알 유희’ 작가님 램프 워킹한 것도 예쁘고, ‘산소울’ 작가님 버섯, 오징어, 바람 모양 도자기도 정말 귀엽고요. 그 옆에 이브닝 스튜디오, 이현우 작가님, 최재형 작가님 작품들 있어요. 그 옆엔 이형재 작가님 수업 듣고 만들어 온 것이에요. 수업 듣는 걸 좋아하는데 듣고 나면 뭘 하나씩 만들어 오니까 그게 또 쌓여요.
빈티지도 좋아하나 봐요.
결혼하면서 모은 거라 오래되진 않았어요. ‘작은 정원’ 사장님 만나면서 미국 빈티지를 알게 되어 직구로 블랭킷 사는 거로 시작했어요. 사 모으다 보니 폭이 넓고 깊어지고 있어요.
빈티지 컬렉션이 방 분위기에 한몫하는 것 같아요. 입고 있는 옷 스타일도 그렇고요.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물건에 영혼이 더 담긴 것 같아 정이 가요. 누군가 사용해서 낡고 손때 묻은 이런 매력은 절대 새것에서 나올 수 없어요. 특히나 이런 색감은 인간이 만들 수 없어요. 오직 세월만 만들 수 있죠. 그게 정말 멋져요.
미니멀리스트가 트렌드라 심플하고 정리된 집이 익숙했어요. 맥시멀리스트의 집이 이렇게 나 아름답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쌓아 놓지만 말고 내다 팔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래야지, 싶은데 잘 안 돼요. 하나하나 소중해서 팔 자신이 없어요. 제 눈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제 방에 이렇게 모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모아놓은 이 공간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끔은 네 명의 식구가 이 방에 다 모일 때가 있어요. 이 넓은 집에서도 굳이 가장 복닥복닥한 이 공간에요. 신랑은 바닥에 누워 있고, 애들은 여기서 뛰어놀고.
엄마가 이 공간에서 가장 편안해하는 걸 아이도 느끼는 걸까요?
아이도 이런 데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지, 엄마가 이 방에 있으니 따라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결혼하면 자기 공간을 갖기가 힘들잖아요. 이 방에 앉아 있으면 소녀 시절로 돌아가 고향 영천의 방에 있는 기분이 들어요. 고향에 대한 욕구를 이렇게 해소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엄마랑 집에 살던 그때를 스스로 재현하는 것 같달까.
어릴 때 방도 이런 모습이었나요?
좋아하는 거 모으는 건 그때도 좋아했어요. 아기자기한 거 사다 모으고, 스티커 붙여서 다이어리 꾸미고, 어디서 받은 티켓이나 팸플렛 벽에 붙이고 서랍에 넣어 놓고요. 아이들이 딱지나 카드를 시리즈로 모으는 것처럼, 여전히 마음엔 소녀가 사나 봐요.
민정은 좋아하는 작품 얘기를 할 때 자유롭고 무한한 아이의 눈이 되었다. 좋아하는 걸 곁에 두고 사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답을 가진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OU 팀에게 강민정은 마당의 유칼립투스 몇 줄기를 끊어 주었다. 차에 실린 잎사귀에서 좋은 향이 머물렀다.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홍두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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