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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OU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


권오현과 박선영은 10년 전, 결혼식 대신 망원동에 카페를 열었다. 그들이 부지런히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두 아들 혁주와 혁오는 각각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을 마쳤다. 10년 차가 된 이 가족의 중간 점검 자리에 오유가 함께했다. 더 오래 패밀리십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무늬 오징어를 낚는 일이었다.



권오현, @monsieurbubu.coffeestand

박선영, @madamebubu.sy










 






(선영) 귤 좀 드세요. 제주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귤이라 맛이 다를 거예요.


잘 먹을게요. 오현 사장님이 제주도에서 올라오길 기다렸어요. 언제 왔어요?


(오현) 제주에서 부산과 울산을 거쳐 어제 올라왔어요. 내일은 제주로 돌아갑니다. 여러 도시에 ‘무슈부부’ 크루들의 매장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어 이동이 많네요. 곧 가족이 다 함께 제주로 이주할 예정이에요.


어머. 큰 이사를 앞두고 있네요. 결혼하면서 쭉 망원에 있지 않았나요?


(선영) 결혼식 대신 망원에 카페를 열었으니 이 동네에서 10년이 넘었어요. 가게 시작하고 일을 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했어요. 많은 일이 있었는데 또 금방 지나간 것 같고 그러네요. 큰아이가 열 살이 되었으니, 숨을 고르며 다음 스텝을 고민할 타이밍이죠.


(오현) 카페를 하기 전에 저희 부부는 디자이너로 살았어요. 자주 마우스를 쥔 채 밤을 새웠어요. 담배꽁초가 쌓여 있고 피와 정신이 탁해졌죠. 제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프면 병원에 가는 기본적인 일이 어렵던 때였어요. 그때 일을 그만두고 카페를 시작했어요. 돈보다 시간을 원해서요.









지금은 어때요? 카페를 운영하며 시간을 충분히 얻었나요? 아니면 혹시 충분한 부를 얻었나요?


(오현) 제주로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떼돈 번 줄 알아요. (웃음) 바로 앞이 바다고, 집도 더 넓어져도 서울에서 쓰는 비용의 절반밖에 안 들어요. 덜 쓰니까 덜 벌어도 되는 방식의 삶이 가능하죠. 그런 삶에서 다시 생기는 건 시간이에요. 벌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면 7시 이후엔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밤에도 뭘 확인해야 하고 보내줘야 했는데 이젠 다 꺼놓고 낚시를 해요. 가족에게도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어 제주로 가는 거예요.


여유를 찾아 먼 섬으로 가네요.


(오현) 옛날에 제주로 이주한 친구들이 내려오라고 하면 제가 그랬어요. “죄지은 것도 없는데 내가 유배를 왜 가냐고.” (웃음) 이젠 제가 제주 홍보대사가 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해요. “우리 도시의 삶을 그만두고 제주로 가자.”고. 


(선영) 원래도 애기 아빠는 가게 일 때문에 제주에 집을 구해놓고 왔다 갔다 했어요. 저희는 이번 방학 때 처음 제주 한 달 살기를 했고요. 가서 보니 괜찮더라고요. 정신과 신체가 건강해지고, 가족이 사이가 돈독해지고, 자유가 생기고요. 내려가서 살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섬으로 들어가는 두려움은 앞서 자리 잡은 친구들이 극복시켜 줬어요. 가족과 같은 형태로 잘 뭉쳐 있는 그들 사이에 쓱 스며들어 지냈죠.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너희 제주로 전학 간대. 알고 있었어? 


(혁오) 네.


이사 가는 거 어때?


(혁주) 좋아요. 낚시도 많이 하고. 


(혁오) 근데 맨날 놀기만 해서 바보가 되면 어떡해?





제주에서 맨날 놀기만 하는, 아주 신나는 여름방학 한 달을 보냈나 봐요. 


(선영) 거의 바다에 던져 놨어요. 눈 뜨면 바다, 다음 날 눈 뜨면 또 바다.


수영을 좋아하나 봐요.


(선영) 우리 애들은 원래 물을 무서워해서 목욕탕에도 잘 못 들어갔어요. 첫 주엔 바다에 가기 전, 긴팔 옷을 입고 선크림을 발랐어요. 시간이 갈수록 불편하다고 옷을 하나둘 벗더니 3주쯤 지나니까 5m 깊이의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고 있더라고요. 생선을 막 손으로 잡아 오고요. 


다칠까 무섭지 않았어요?


(혁오) 다른 애들도 해요. 안 무서워요. 


(선영) 노는 방법과 규칙을 알게 되면요. 오히려 사고가 없어요.


(오현) 도시에서는 뭔가를 하려면 수업을 등록해야 하잖아요. 제주도에서는 그냥 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니까요.





제주의 환경에 사람을 자연스럽게 하는 뭔가가 있을까요? 도시와는 다른?


(선영) 잘 놀려면 바다에 언제 물이 차는지 알아야 해요. 놀러 나가기 위해서 달과 지구, 바다의 원리를 배우는 거죠. 대신 자연이 가르쳐주니까 시간이 오래 걸려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죠. 이젠 홍제천에만 놀러 가도 애들이 “만조네. 물이 가득해.” 이렇게 말해요. (웃음)


(오현) 도시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어요. 택배를 시키든 앞에 가게에 가든. 근데 제주는 안 돼요. 밤엔 가게가 다 닫고 때론 파는 곳이 없기도 하고 배달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고요.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억지로는 어려워요. 자연 안에서 시간을 들여 순리를 배워야 해요.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니까 더욱 그 변화가 느껴졌겠어요. 


(선영) 도시에서는 학교 갈 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이고, 날이 추우면 추워서 걱정이었어요. 애들도 나름대로 이 옷은 까끌까끌해서 싫고 저 옷은 미끌거려서 싫다고 까탈을 부렸고요. 혁오는 특히 하루에 세 번씩도 옷을 갈아입는 애거든요. 제주도에 한 달 다녀오고 나서 많이 바뀌었어요. 한 달뿐인데 신기하죠? 자연에서 놀다 보니 많은 게 유연해졌어요.


(오현) 이젠 비가 오면 당연히 젖는 걸로 생각해요. 그게 자연스럽단 걸 알게 된 거죠.


혁주랑 혁오가 궁금해요. 둘은 비슷한 성향인가요?


(선영) 반대에요. 혁주는 손재주가 좋아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망원동 동네 이모들의 기술을 습득해 뜨개질을 했어요. 가게에 앉아 고양이, 강아지들 목도리를 떠주는데 색조합을 잘해요. 제주에서는 나무를 쌓아서 바람구멍을 만들어 캠프파이어를 끝내주게 만들고요. 혁오는 뭐든지 맨손으로 터프하게 해요. 고기도 손으로 잡고 물에도 먼저 뛰어들고요. 겁이 없어요.





혁주가 낚시하는 영상을 SNS에서 봤어요.


(오현) 처음 무늬오징어를 낚았을 때요? 제주에 있는 동안, 혁주가 매일 밤 저를 따라 낚시를 왔어요. 무늬오징어를 낚는 일은 다른 낚시랑 좀 달라요. 찌를 던져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여야 하거든요. 저도 오랜만에 하면 등이랑 팔다리에 알이 배겨요. 어린이 몸으로는 더 고된 일이었을 텐데 참을성 있게 기다렸죠. 3주째엔가 성공했어요. 영상 마지막엔 혁주가 그 성취감에 전율하며 눈물을 쏟아요. 그걸 보며 가족 모두 눈물바다가 되고요.


(선영) 엄마로서도 감동이었어요. 제주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아빠를 보는 눈도 달라졌어요. 혁주는 아빠가 무늬오징어를 낚는 걸 보면서 머릿속에 그 꿈을 키웠을 거예요. 앞서 잡은 한치나 문어는 시큰둥했거든요. 아빠를 따라 자기도 무늬오징어가 잡고 싶으니까 계속 도전하는 거죠. 혁오는 무늬오징어를 잡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형을 응원했어요. 혁주는 아빠가 멋있다고 말하고, 혁오는 형이 멋있다고 자주 했죠. 가족이 서로를 동경하고 응원하며 끈끈해지는 과정이었어요.


(오현) 서울에 있으면 생일에 케이크나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 아빠였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좋은 걸 보여주고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된 것 같아요.





오현 사장님은 언제부터 낚시했어요?


(오현) 제가 강원도 동해 출신이긴 한데, 낚시는 제주에 와서 본격적으로 했어요. 카페 일 때문에 제주에 작은 집을 구해서 혼자 살았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공허하니까 김치 꺼내서 참치 캔 하나에 소주를 마셨어요. 아니면 계속 일을 했죠. 건강이 많이 상했어요.


(선영) 안색부터가 달랐어요. 얼굴이 까맣고 몸무게도 지금보다 16kg이나 더 나갔어요. 


(오현) 몸이 독으로 차 있었죠. 이러면 서울 생활이랑 다를 게 없겠다 싶어 낚시를 시작했어요. 퇴근길에 1시간 40분이 소요되는데 그 길을 30분 간격으로 낚시하면서 왔어요.


이전에 낚시를 해본 기억이 좋았나 봐요.


(오현) 제주 서귀포에서 친구랑 낚시한 기억이 좋았죠. 갯바위 틈을 걸어 들어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카만 어둠의 공간에 우두커니 서요. 바다 위로 별이 쏟아지는데 거기에 낚싯대를 던지는 거예요.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우리가 불을 켜지 않으면 빛이 없어요. 지금도 생각하니 아름다워서 소름이 돋네요.


더 듣고 싶어요. 그땐 뭘 낚았나요?


(오현) 글쎄요. 뭘 낚았더라. 그냥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머릿속의 생각이 다 정리되던 게 기억나요. 그렇게 한 달을 그 친구랑 매일 밤낚시를 나갔어요. 종종 혼자도 가고요. 아무것도 못 잡은 것 같네요.


(선영) 낚시하면서 남편은 되게 많이 건강해졌어요. 빈 바다를 보면서 많은 게 해소가 되었나 봐요. 무늬오징어도 많이 낚았고요. 그걸 나눠 먹으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이제 “오징어 먹을 사람?” 하면 꽤 많은 사람이 모여요. 썰어 먹고 데쳐 먹고 구워 먹으며 한참을 웃어요.


무늬오징어가 평화를 가져왔네요. 


(오현) 진짜로 그래요. 낚시를 하면서 술을 끊고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거든요. 무늬오징어를 낚으면서 친구 딸 얘기를 듣는데 저도 혁주, 혁오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내일모레 쉰 살이거든요. 한 55살까지 같이 뛰어놀 수 있다고 하면 많이 남지 않은 거잖아요. 게임을 할 때, 다음 판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하트로 표현하는 것에 빗대면 제게 하트가 몇 개 없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든 늘리고 싶었어요. 몸에 나쁜 걸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놀 수 있는 시간 동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청나게 재밌게 놀자고 다짐했고요. 두 아이와 아이 엄마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많은 시간 더 신나게 놀고 싶어요.


(선영) 뭔가 값진 것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주로의 이주를 결정한 지금 저에겐 삶의 목표가 두 가지로 다듬어졌어요. 가족과 건강이요. 


가게 슬로건이자 이 집 가훈이 생각나네요.


(오현) ‘For a long life in the family’ 가게 열면서 만든 슬로건인데, 어떻게 보면 저 문장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해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건 우리가 가족이란 사실이잖아요. 삶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거고요. 길게 잘 살려면 건강해야 하고, 주변 친구들과 가족이 되어 잘 지내야 해요. 그래야 가족이 더 오래 갈 수 있어요.







 ‘For a long life in the family’

" 어떻게 보면 저 문장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해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건 우리가 가족이란 사실이잖아요."






예전에 선영 사장님이 해준 말 중에 좋았던 게 있어요.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은 자존감에서 나온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자연스럽고 멋진 이 가족의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었네요.


(선영) 예전엔 뭔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이 어려웠어요. 제주에 가는 일이 그 행동의 시작이에요. 시작이 가장 크죠.


(오현) 지금 저는 가장 나답게 산다고 생각해요. 한때 책 <데미안>을 좋아해서 굉장히 자주 읽었어요. ‘나다운 게 뭘까?’를 고민하면서요. 이젠 데미안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가장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해답을 이미 얻었거든요.






오, 그래서 오현 사장님에게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요?


(오현) 오늘 밤에 낚시 가고, 내일 아침에 애기 엄마랑 수영장 가는 거요. 도시에서 살 때는 어떻게든 돈을 더 벌려고 노력했어요. 돈이 있어야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우리 가족이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이제 알아요.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음에 낚시를 하러 가는 일이에요.


(선영) 제주에 가면 ‘입도식'이라고 아침에 온 가족이 김녕 해수욕장에 있는 사우나에 가요. 탕에 몸을 담그고 나와서 좋아하는 국숫집에 들러 국수를 먹고요. 바다를 산책하고 커피를 한잔한 다음엔 집에 와서 한참을 쉬어요. 오후가 되면 바다에 가서 놀거나 낚시를 하러 가죠. 앞으로도 돈은 벌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돈 걱정도 하겠지만 적당히 하려고요. 얽매이진 않으려 해요.


(오현) 이전처럼 걱정에 최선을 다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런다고 해결되는 게 없단 걸 알았거든요. 걱정도 나눠서, 적당히, ‘어떻게 되겠지’와 ‘내일 해야지'를 섞어가며.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심예림 작가






OU STORYBOOK Issue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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