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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OU housekeeper

산이 좋은 사람들


“이 앞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저희가 자주 가는 음식점이에요.” 북한산 자락에 사는 이태윤, 이아영 부부에게 약속 장소를 물었다. 지도를 보내 주기에 클릭하니 화면에 ‘산이 좋은 사람들’이란 간판이 떴다. 식당 앞에서 둘을 만났다. 산이 좋은 둘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산을 걷다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겨울꽃 구경을 하다가 보온병에서 차를 꺼내서 마시고 마저 걸었다.


이아영, @2a02a02a0

이태윤, @bigyoon








 





북한산 가까이 살고 있다더니 정말 가깝네요. 어떤가요? 산 아래 삶은?


(아영) 좋죠. 출근 전에 잠깐 산길을 걸을 수도 있고요.

 

출근 전에 산을 올라요? 피곤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산의 기운이 막 차오르나요?


(아영) 아침에 눈뜰 때 기분이 다르죠. (웃음) 출근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산에 갈 생각이 먼저니까 설레고 긴장도 되고.

 

어떻게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태윤) 저는 계속 이 근처에서 자랐어요. 다른 지역도 둘러보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가 좋더라고요. 3분 거리에 부모님이 사시고, 산 아래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산은 언제부터 다녔어요? 산에 대한 첫 기억이 궁금해요.


(아영) 저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요. 여수는 어딜 가도 뒤에 산이 있고 앞 엔 바다가 펼쳐지는 도시예요. 둘레길 걷고 계곡에서 다슬기 잡는게 일상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산 정상까지 여러 갈래 길이 있단 걸 처음 알았어요. 주말이 되면, 친구랑 각자 집 앞에서 시작해서 정상에서 보기로 하고 산길을 걸어요. 정상에서 만나 같은 길로 내려와서는 목욕탕 갔다가 친구 집에서 떡볶이를 해 먹고요. 많은 주말을 그렇게 보낸 것 같아요.


(태윤) 제 첫 산은 역시 북한산이에요. 아빠랑 갔는데 그땐 제가 꽤 작고 어렸나 봐요. 지나가는 어른들이 모두 절 보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준 기억이 나요. 이후로도 종종 아빠랑 산에 다녔어요. 백운대 정상에서 찍은 어린 저와 아빠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그때부터 쭉 산에 다녔어요?


(태윤) 쭉 다닌 건 아니에요. 자라면서 뜸하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시 산에 다녔어요. ‘뉴잭’ 이라는 이름의 흑인 음악 창작부 활동을 했는데 그때 부원들과 같이요. 산길을 걷는 일이 마냥 좋았어요. 게임도 운동도 즐기지 않으니, 산이 제겐 유일한 취미생활이에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때 산에 같이 다니던 뉴잭 멤버들이랑 여전히 산을 찾아요.





산과 힙합이라니 멋진 조합인데요. 아영님은 요새 암벽 등반하죠?


(아영) 올해 4월에 코오롱 등산학교 정규반을 졸업했어요. 내년엔 빙벽에 도전하고 싶어요. 남편이 얼음이 부서져 내리는 영상을 보고 위험하다고 말리고 있지만요.


(태윤) 내년에 일단 저도 등산학교를 등록해서 다녀보려고요. 아내가 자꾸 저에게도 등반을 배워두라고 권하니 궁금해요. 등반을 알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산에서 쓰는 장비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산 타는 일을 좋아하니까. 아니, 오르는 일을요.

 

산을 타는 것과 오르는 것은 무엇이 달라요?


(아영) 산 선생님께 들은 얘긴데, 산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긴 세월 자리를 지켜냈잖아요. 우리는 산 위에 타기 에 지극히 어리고 작은 존재고요. 인간이 산을 오른다는 말이 맞죠.





오, 그렇군요. 저도 ‘오른다’는 표현을 써야겠어요. 산에서는 뭘 먹는게 가장 맛있나요?


(아영) 멜론이요. 시원하고 과즙이 많거든요. 겨울에는 샤인 머스캣이 맛있어요. 알이 얼어서 샤베트처럼 되거든요.


(태윤) 저는 힘들면 입맛이 좀 없어져요. 그래서 콜라가 가장 맛있어요. 온몸이 당분과 짜릿함을 빨아들이는게 느껴져요. (잠시 멈칫) 아, 사실은 아내의 도시락이 가장 맛있어요!

 

산에 도시락을 싸가요?


(아영) 네. 제가 재밌어서 싸기도 하지만 일회용품을 피하려고 싸기도 해요. 김밥의 포일이나 나무젓가락, 물을 담은 페트병이 싫어서요. 남편은 산에서 인간이 버리고 간 흔적을 보는 걸 정말 힘들어해요. 1분도 지각하지 않고, 아무도 없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남자’거든요. 자연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덴 저도 매우 동의하는 바라 기쁘게 도시락을 쌉니다.







혹 오늘 촬영을 마치고도 산을 오르세요? 복장이 완벽한 산악인인데요.


(태윤) 아쉽게도 오후엔 일하러 매장에 나갑니다. 저는 아크테릭스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덕분에 아웃도어 복장을 챙겨 입기 유리하죠.

 

지금 모습이 평소 옷차림인가요?


(태윤) 저는 진짜 늘 이 차림이에요. 운동선수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처럼 날씬하거나 신체 조건이 좋진 않지만, 이런 사람도 산을 오르고 백패킹을 취미로 즐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내가 산에 가도 될까?’ 고민하지 않았으면 해요. 저처럼 평범보다 살짝 살이 오른 사람도 산에서 즐겁게 지내니까요.


(아영) 저도 요샌 이게 거의 평소 차림이에요. 대신 오늘 사진에 잘 나오려고 어제 하루종일 굶었어요.

 

(태윤) 어젯밤에 치킨 시켜 먹을 뻔 했는데, 사진에 부하게 나온다고 말리더라고요. 노랑통닭 먹고 싶었는데. (웃음)


(아영) 잘 말렸죠? 저는 계속 의류 디자이너로 일을 해 왔어요. 호피 같은 화려한 패턴이나 등이 노출된 특이한 옷을 많이 입었어요. 빈티지 옷도 좋아해서 엄청나게 샀고 데님도 집에 진짜 많아요.


 



아영 님은 데님 브랜드에서 일했었죠?


(아영) 맞아요. 리바이스의 테일러로 활동했어요. 그 전엔 오유의 리사이클 소재 담요처럼 저도 구제 데님이나 폐 데님을 활용해 리사이클 브랜드를 운영했어요.


(태윤) 제가 아내의 리사이클 브랜드를 진짜 좋아했어요. 멋있었거든요. 버려지고 못 입는 옷을 가지고 팔꿈치를 덧대거나 조각을 붙여 근사한 새 옷을 만드니까요.

 

아웃도어 의류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태윤)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브랜드보다 오래 입을 수 있고 끝까지 남는 브랜드가 좋아요. 처음에는 무조건 가볍고 편안한 걸 골랐는데요. 산의 무서움과 위대함을 알면서 자연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그를 바탕으로 옷을 만 드는 브랜드 옷을 골라요. 브랜드도 태생마다 분위기가 달라요. 북유럽 브랜드는 무겁고 빳빳한 반면 일본 브랜드는 가볍고 유연하죠. 브랜드를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쳤는지 따져보면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어요.





SNS를 보니 데이트 반은 산에서 반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것 같던데요.


(태윤) 쉬는 날마다 산에 가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 유행하는 빵도 먹어 보고 싶고 세련된 핫플도 걸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도시 데이트를 섞어서 하죠.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도시 데이트’라고 하는군요. 최근의 것은 어디였어요?


(아영) 망원동이요. 육개장 먹고 커피 마시고 마무리로 자전거를 탔어요.


오늘의 등산이 끝나가네요. 그럼, 이제 서로의 칭찬으로 대화를 마무리해 볼까요?


(태윤) 반전 매력. 처음에 SNS를 통해 산에 다니는 아영을 봤어요. 혼자서 산을 오르는 모습도 멋졌고, 평소 디자이너로서의 모습도 멋있었어요. 호피, 얼룩말 무늬, 실크와 반짝이까지 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보고 차가운 도시 여자란 이런 사람일까 생각했죠. 처음 실제로 만나게 된 건 광화문의 낙지집이였어요.


(아영) 한창 매운 낙지에 빠져 있었어요. 서린 낙지라고 매콤하고 맛있어요. ‘차도녀’일 것 같았는데 여수 사람이라 귀여웠나요?


(태윤) 아, 그렇다기보다, 음 그렇기도 한데, (웃음) 수수하고 쾌활했어요. 주변 사람 잘 챙기는 따뜻한 스타일이에요.







"산 아래 같이 사는 삶보다 좋은 걸 떠올릴 수 없어요."






귀여운 포인트를 하나 꼽는다면?


(태윤) 카랑카랑한 목소리요. 귀여워요.


(아영) 전 오빠가 몰래 먹는 거요. 제가 매번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든요. 밖에서 먹는 음식은 질리기도 하고, 요새 외식 물가가 비싸기도 하니까요. 점심에 도시락을 먹고 나면 저녁 시간쯤 배가 고플 만도 한데, 맨날 괜찮대요. 뭘 먹은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배가 빵빵하고요. 어젠 제가 오빠 매장에 얘기 없이 방문을 했는데 스태프 휴게실에서 뽀스락대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더라고요. 퇴근하고 근처 KFC에 들러 닭튀김을 먹고 올 때도 있고요. 이런 점이 귀엽습니다.






설악산의 무엇이 그렇게 좋아요?


(아영) 몇 년 전에 절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힘들더라고요. 한동안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 득 ‘설악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 뒷산에 오를 때처럼 튼튼한 등산화 한 켤레만 신고 설악산에 갔어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치유를 받았어요. 언젠가 꼭 여기 와서 살고 싶다고 결심했죠. 그날 설악산을 계기로 지금까지 매주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태윤) 둘 다 산을 좋아하니까 산 아래 같이 사는 삶보다 좋은 걸 떠올릴 수 없어요. 그렇게 궁리한 게 더 좋아하는 산 아래로 삶을 옮기는 것이죠. 마흔 살이 빠듯하다면 적어도 쉰 살 무렵엔 설악 근방에서 등반하고 등산하며 조용히 살고 싶어요.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심예림 작가






OU STORYBOOK Issue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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