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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OU

서른, 묘정의 멀리 가기 위한 묘안


묘정은 티끌 하나 없이 해맑은 소녀의 표정으로 웃고, 먹고, 말한다. 그러다가도 한없이 고독하고 진지한 얼굴로 일을 한다. 올해 서른 살이 된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매일을 기록한다. 하루를 꼼꼼히 영상에 담기도, 손으로 꾹꾹 눌러 가계부와 일기를 쓰기도 한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엄마에게 월급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꽤 야무지고 어른스럽다.

김묘정, 바리스타

@myozzang








 








출근 전에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커피 일을 하고 있다고요?

네. 뚝섬역에 있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어요.


어때요, 커피 일은?

즐거워요. 여태껏 커피 일을 하면서 처음이라고 하면, 이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서운하겠죠? 그만큼이나 즐거워요.


잘됐네요! 어떤 점이 특히 그래요?

내가 하고 싶은 커피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묘정 님이 하고 싶은 커피는 어떤 건데요?

저는 기술적으로 커피를 잘하기보다는 커피를 매개체로 사람을 잘 만나는 사람이고 싶어요. 지금 일하는 매장은 그걸 정말 잘할 수 있는 곳이에요. 보통 손님이 몰려 바빠지면, 니즈만 파악하게 되잖아요. ‘주문 도와드릴까요?’가 대화 전부가 되는 식이죠. 근데 여긴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요. ‘이 커피 좋아하면, 이것도 맘에 드실 거예요.’, ‘멀리서 오셨어요? 서울숲에 이런 곳이 있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또는 단골에게 ‘감기는 좀 괜찮아졌어요?’ 안부도 묻고요. 이런 배경은 오히려 제가 커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해요.


묘정 님이 커피 내리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처음부터 바리스타를 꿈꿨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 스케치북에 장래 희망 그리라고 시키잖아요. 그때 바리스타의 개념은 없었겠지만, 바에서 음료를 만드는 사람을 그렸던 기억이 나요. 그러고 보니, 저 꿈을 이뤘네요(웃음). 꼭 집어 바리스타는 아니었지만, 외식업이 하고 싶었어요. 내 에너지가 담긴 ‘무언가’를 손님에게 서비스하고 그와 소통하고 싶단 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쭉 이 업계 일을 해오긴 했는데, 그 ‘무언가’가 커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였어요. 작은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한국에 돌아가면 커피를 하자, 생각했고 커피를 하고 있어요.


오, 일본 어디에 있었어요?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도시, 삿포로요. 일 년 동안 지인의 고깃집에서 일했어요. 친구를 꽤 많이 만들었어요. 가족 단위로 찾는 가게라 식사를 가져다주고, 고기를 구워주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거든요. 어린 손님이 오면 놀기도 하고요. 그렇게 알게 된 친구들이랑은 여행도 다니고, 집에도 놀러 가고, 밥도 얻어먹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부둥켜안고 울 만큼 정이 들었어요. 마나토라는 꼬마 손님이 고사리손으로 편지도 써 주고 종이도 접어준 추억이 있네요.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매 순간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관계가 어려워 친한 소수의 사람하고만 잘 지내왔거든요. 돌아보니 좋은 사람이 늘 주변에 많았는데, 제가 못 본 거에요. 요즘은 일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이려고 해요. 적어도 그러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8시간씩 근무한다고 들었어요. 남는 시간은 어떻게 써요?

제가 얼마 전에 서른 살이 되었거든요. 남는 시간 활용법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 버전으로 얘기할까요?


기대되네요. 네, 요즘 기준으로 얘기해주세요.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 해요.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작년부터 꾸준히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올해부터는 일기랑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어요. 기록하는 그 자체의 재미도 있고, 스스로 계획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힘을 기르게 되면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일기엔 어떤 걸 써요?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에 대한 느낌, 내일 할 일, 그런 거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자기 객관화에도 도움이 돼요. 이런 하루가 쌓여 멋진 30대를 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가계부 쓰는 사람은 오랜만에 봐요.

이전엔 돈 개념이 없었어요. 가지려는 노력도 없었고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번 만큼 쓰고, 쓴 만큼 벌자.’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삶이 계속되더라고요 (웃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기의 순간이 올 수도 있고, 내가 더 나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순간도 오잖아요. 그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생각보다 돈 모으는 데 가계부 역할이 커요. 현재 생활비로 가지고 있는 잔고를 적고, 매일 지출을 적어요. 그 안에서만 움직이면 불필요한 지출이 줄여나갈 수 있어요.


예전에 했던 불필요한 지출은 뭐가 있었어요?

카페(웃음). 제가 좋아하는 순간이에요.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컴퓨터를 하는 건 지금도 제 유일한 힐링 시간이에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근데 그 지출을 줄인 거예요?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집에서 커피 내려 마시면서 고요하게 내 시간을 가지는 연습을 해보니 괜찮더라고요. 그 지출을 줄인 게 생각보다 효과적이었어요. 파킹 통장으로 돌리거나 투자를 하는 거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거든요. 직장 동료들이 투자 얘기를 자주 하는데, 그 영향도 있었어요. 최근엔 주식도 좀 샀어요. 도박 같이 느껴졌었는데, 꾸준히 공부해가면서 시도하면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는 마음으로요. 머니 로드맵도 만들었어요. 1년 뒤, 10년 뒤 이 정도 돈을 모아서 이렇게 불려 나가야지 계획도 세우고요. 돈을 모아 나중에 내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공간은 마련인가요? 아니면 카페 창업?

집보다는 커피를 위한 공간이 가까운 것 같아요. 대출을 받더라도 앞으로 5년 정도 바짝 모아서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공간에서 에너지나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내가 커피를 줄 수도, 내가 가진 이야기를 내놓을 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여 앉아서 혹은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생각해 둔 이름이 있어요?

제 이름 가운데 글자인 ‘묘’를 좋아해요. 그 글자를 넣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묘 카페’라고 다른 사람들이 지어줬는데, 막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도 해요. 청개구리라서요(웃음). 공간과 나를 일치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주거 문제는 최대한 빨리 전세로 넘어가고 싶어요. 지금은 월세가 자리를 크게 차지하니까요.


셰어 하우스에 살고 있다고요.

네. 일 년쯤 살았어요. 주방, 화장실, 거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요. 방만 따로에요. 예전엔 주방을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은 잘 안 내려가요. 일터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집에선 조용히 있고 싶어요.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고요. 다음 달엔 더 작은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어요. 방값도 아끼고, 지금 방이 너무 크기도 해서요.


큰 방에서 작은 방으로 이사하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를 읽고 적게 가지고, 가진 물건의 용도를 더 생각해 보려 하고 있어요. 많이 비웠는데, 방을 옮기면서 더 줄여보려 해요. 다 읽은 책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안 입는 옷은 정리하고.


예전엔 낭비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어떤 시간을 낭비라고 느껴요?

음. 누워 있거나.


진짜 안 누워있을 것처럼 보이는데요(웃음).

침대도 아니고 그냥 맨바닥에 잘 누워있었어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인지가 안 될 정도로 흘려보낸 것 같아요. 주로 SNS에 많이 허비했어요. 요즘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하나만 볼 수 없게 다음 행동으로 자꾸 유도하잖아요. 영상 편집으로 생각하면 통으로 잘라내도 될 것 같은 시간이 있더라고요. 애초에 촬영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만큼 재미도, 영양가도 없는 그런 시간이요. 눕는 대신 책상에 앉아 뭐라도 하려고 해요.









묘정 님의 브이로그를 보면 엄마한테 보내는 영상 편지 같다는 느낌이 때가 있어요.

엄마가 애청자에요. 놓칠 수 없게 엄마 휴대폰에 제가 알림 설정도 해놨어요. 엄마는 저보다도 먼저 유튜브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고요.


엄마는 유튜브에서 뭘 즐겨봐요?

건강 정보, 종교 관련 영상, 그리고 사람들 브이로그 같은 거요. 엄마가 자주 보는 플랫폼에다 기록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떨어져 지내면 엄마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니 걱정하는 것 같아서요. 잘 지내고 있다는데 왜 늘 걱정일까 생각해보니, 엄마 눈엔 안 보이니까 그랬던 거에요. 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서 이제 절 믿는 눈치더라고요. 어디서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다 볼 수 있으니까요. “너는 어디서든 잘 살겠더라.” 얘기도 해줬어요. 그래서 요샌 통화도 많이 줄었네요(웃음).


엄마랑 통화하면 무슨 얘기하는지 궁금해요.

엄마는 꼭 밥 먹었냐고 물어봐요. 제가 먹었다고 하면 뭐 먹었는지도 물어보고. 저는 그게 그렇게 싫었어요.


왜요?

안 챙겨 먹었으니까요(웃음). 그런 질문 받으면 “알아서 먹을게.” 얼버무릴 때가 많아요.


요즘도 잘 안 먹어요?

사 먹으면 한 끼에 8~9,000원은 그냥 나가잖아요. 제가 양이 많지도 않은데, 식당에서 먹으면 몸에 꼭 필요하지 않은 에너지까지도 섭취하게 되니까 아까워요. 대신 요즘엔 편의점에서 나물, 된장이 재료인 컵밥 같은 걸 사 먹어요. 서울숲 샐러드 가게 ‘르베지왕’은 밥을 세 개로 소분 포장해주는데, 그걸 사뒀다 먹기도 하고요.


엄마 밥 그립겠어요. 생각나는 엄마 음식 있어요?

다 먹고 싶죠. ‘뭐 먹고 싶어?’ 하면 늘 말하는 건 된장찌개에요. 엄마가 텃밭에서 키운 풀 같은 걸 넣고 끓이는데, 달래 말곤 잘 모르겠네요. 계절별로 달라져요. 엄마 밥에는 제가 모르는 잡곡도 잔뜩 들어가요. 그래서 매번 새롭고 맛있어요.

밥 말고도 엄마는 건강 얘기를 자주 해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다, 부류의. 같은 맥락으로, 따뜻한 물 많이 마셔라, 운동해라, 잠 일찍 자라, 와 같은 누구나 알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 있잖아요. 전엔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새벽에 아무 때나 잠들었는데, 이젠 자정 전엔 꼭 자려고 하고요. 총수면 시간은 비슷한데, 덜 피로하고, 생산성도 좋아지더라고요. 건강을 챙기는 게 면역력을 기르는 거잖아요. 면역력은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거고요. 그게 나를 나로 살 수 있게 하는 기본인 것 같아요. 제가 받아들이질 않아서 그렇지 엄마 말 틀린 말이 하나 없어요.







반대로 엄마한테는 무슨 얘기를 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얘기(웃음). 예전에 저한테 엄마가 자주 해주던 얘기에요.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았거든요. 이젠 반대로 엄마한테 그 말을 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면서 배우기도 한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우린 모두 어른이지만, 막상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잘 떠오르지 않잖아요. 옆에서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주면 과몰입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돼요. 혹시 엄마가 어떤 상황에 빠져 힘들어할까 봐 자주자주 그렇게 말해줘요.




예전엔 저 힘든 얘기는 안 했거든요? 엄마는 이해 못 할 일인데 괜히 걱정 끼칠까 봐서요. 요샌 해요. 의외로 엄마가 공감해주고 조언해 주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생각해보면 엄마도 계속 일을 했었고, 거기서 얻은 게 많은 인생 선배잖아요.



엄마의 조언 가장 도움이 됐던 하나만 얘기해주세요.

엄마가 회사에서 어려웠던 때가 있어요. 다 같이 옳지 않은 길을 걸으려 하는데, 혼자 총대를 메고 이건 잘못이라고 말하고 반대했거든요.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이에요. 그런데도 맞는 길을 걸으려 했고, 그 길을 끝까지 걸었어요. 그때 제가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있을 때였거든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엄마 얘기 들으면서 ‘엄마가 그만해. 그만 좀 하자’라 말할 정도로요.


회사 생활뿐 아니라 삶을 사는 데도 영향을 미쳤겠어요.

매 순간이요. 정직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자. 내가 가진 생각을 누군가가 무너트리려 해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전 주변에 엄청나게 휘둘리는 사람이거든요. 이전 회사에 다닐 때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중심을 잘 못 잡았어요. 그게 힘들어서 결국 퇴사를 결심했을 정도로요. 지금 회사도 사람이 많아서 이직할 때 걱정했어요. 하지만 전에 고생하면서 다잡은 덕인지 같은 실수는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무리 속에서도 날 지키며 지낼 수 있게 되었거든요. 나를 속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남도 속이지 않게 되거든요. 그럼 욕을 먹더라도 떳떳하게 나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직하면 당당할 수 있고, 겸손할 수도 있어요. 적어도 부끄러울 일이 없어요.


엄마는 무슨 일을 하세요?

그때는 요양보호사였어요.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고요.


전엔 다른 일을 하셨나 봐요.




돈 되는 일이면 다 했어요. 휴대폰 판매, 편의점, 노래연습장……. 자라면서 엄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엄마는 생존형 사업가였어요. 그의 30대는 몸을 아끼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면서 보냈어요. 덕분에 저와 오빠가 잘 자랐으니, 이제 저의 30대를 엄마를 위해 쓰고 싶어요. 엄마가 나중에 일을 안 할 수 있게, 엄마에게 월급을 주는 딸이 되고 싶어요.



고향이 어디예요?

경상남도 김해에요. 엄마는 충남 보령에 있어요.


그럼 김해에서 태어나서 보령으로 이사한 거예요?

아니요. 보령은 저와 별로 관계가 없어요. 엄마가 일을 보령으로 옮기면서 이사했을 때 전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김해에서 자라던 때, 묘정 님은 어떤 어린이였나요?

애어른이요. 지금이랑 같은 생각을 그때도 가지고 있었어요. 몸은 작은 어린애인데, 서른 살이 할 법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으면 친구들이랑 얘기가 잘 안 통하잖아요. 그래서 애들이랑 놀다 보면 집에 가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적당히 고독을 씹을 줄 알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랑 있어야 할 때는 잘 맞추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걸 이미 알았으니까요. 어린이 치고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긴 해요. 스트레스도 많았고요. 인제야 몸에 딱 맞는 정신연령을 지니게 된 것 같아요.


엄마랑은 어떤 사이에요?

친구요. 가장 친하고 가장 많이 싸운.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해줬어요. 제가 작은 거로 토라져 틱틱거리면 엄마도 툭툭 뱉어요. 대신 제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아니~ 얘기 좀 마저 들어봐~”하며 먼저 문을 두드려줘요. 그러고 보면 엄마는 기다려주고 늘 그 자리에 있어 줬던 것 같아요. 철이 일찍 들어서 엄마한테 큰 잘못을 한 적이 없기도 해요. 엄만 절 자유롭게 해줬고, 전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1993년, 엄마 나이 30.



사진 속 엄마는 몇 살이에요?

서른 살이요. 스물아홉 살에 절 낳으셨는데, 사진 속 제가 돌이거든요.


엄마 옷차림을 보니 어때요?

사진 속 엄마 니트는 제가 최근까지도 입었어요. 엄마가 옛날 사진을 보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즐겨 입는 스타일이랑 같더라고요. 사진에 들어가서 옷을 꺼내오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게 많아요.


평소에 어떤 옷을 즐겨 입어요? 나를 품고도 널찍하게 남는 옷이요. 따뜻한 색에 군더더기가 없는 게 좋아요.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원하지 않거든요. 제가 피부가 약해서 자극적인 소재는 피하려 해요. 브랜드 ‘무인양품’ 같단 얘기를 종종 듣는데,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 스타일이 만들어진 건 언제예요?

일본에서인 것 같아요. 가서 만난 사람들, 본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요즘엔 옷을 거의 안 사요. 자주 입는 옷 몇 벌을 가지고 돌려 입는데, 별로 질리지 않더라고요. ‘상의1’이랑 ‘하의1’의 조합이 귀여워서 가지고 있어요. 근데 ‘상의1’은 ‘하의2’,’하의3’이랑도 잘 어울려요. 제가 가진 옷이 다 비슷한 느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스타일이 생기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겠네요.

지금 신은 오로라 슈즈는 스물두 살에 산 거에요. 길에서 다른 사람이 신은 걸 봤는데 마음속에서 ‘저건 사야 해!’ 속삭임이 들렸어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찾았는데, 주문생산 방식에 인터넷 직구를 통해서만 살 수 있더라고요. 수제화라 가격이 부담이었지만,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결국 손에 넣었어요. 처음으로 잘 만들어진 좋은 물건을 내 힘으로 가지게 된 순간이었어요. 오래 신어서 여기저기 닳긴 했지만, 여전히 아침이면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하며 신게 되네요.

지금 엄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뭐에요?

한참 안 바뀌어서 기억해요. 올케 언니, 엄마, 나 이렇게 여자 셋이 찍은 사진이 프로필이에요. 그 위에 크게 뜨는 배경 사진은 저고요. 엄마 카카오톡엔 엄마가 하나, 새언니 하나, 그리고 제가 둘이에요.


엄마 자랑 해주세요.

엄마는 맡은 바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남이 보지 않더라도,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사람, 기깔나는 사람이에요.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져 준 걸 보면 그건 확실하게 자랑할 수 있어요.


유튜브 댓글에 ‘존버해서, 존버하고, 존버하자!’라 쓴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동안 저는 너무 쉽게 무언가를 포기한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열정이 넘친 대신 빨리 지쳤거든요. 지금까지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젠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요. 길게 걸었을 때 만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아무쪼록 제가 있는 곳에서 존중하며 버텨보려고 합니다.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정현우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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