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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리지 않게요.


오글거린다는 단어는 원래 작은 그릇에 찌개가 끓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불혹의 나이를 맞이한 현진은 지지고 볶고 싶지 않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서 표표히 살아나가면 그만이다. 나이에 맞게 끼워 맞추거나 많은 걸 억지로 담을 마음도 없다.


피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면 정면돌파 대신 살짝 몸을 돌려 빠져나오는 걸 택한다. 입맛이 다르면 반찬을 두 개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그는 어떤 갈등에도 휘말릴 생각이 없다. 현진은 자신의 삶에 기준이 된 지 오래다. 세상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남들도 얼추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 추측하고 만다. ‘아니, 다들 그렇지 않나요?’

이현진, @cococorgi2















안녕하세요. 아니, 왜 이렇게 어색해해요?

떨려요. 오기 전에 형중이랑 인터뷰 모의 연습도 했어요. 아, 형중이는 남편 이름.

다들 수다 떨듯이 얘기하고 갔어요. 편하게 하세요. 제가 잘 오리고 붙일게요.요즘 일과는 어때요? 그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몇 달 전에 새로 일을 시작했어요. 친구가 일본에 액세서리 가게를 열었는데, 거기에 한국 액세서리를 납품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남대문에 가서 물건을 사고, 다른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요즘 트렌드를 찾아봐요. 요즘 활동하는 걸그룹이 착용한 쥬얼리나 BTS의 스타일링 같은 걸 봐요. 오더를 많이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요즘 제일 쏠쏠한 재미에요.


꽤 잘 되나 봐요?

일본에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지금은 주춤해요.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뭐해요?

요리 많이 해요.


2인 가정으로 알고 있어요. 요리를 다양하게 많이 하기에 어렵지 않나요?

제가 먹는 걸 좋아해요. 처음에는 술에 곁들일 안주를 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취미가 되었고요. 요즘에는 시간을 들여서 낯선 요리를 해보고 있어요. 무를 얇게 썰어서 김치도 담가 보고요. 형중이가 가리는 음식이 많고, 술도 안 마시고, 입도 짧거든요. 그래서 저는 두세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해요. 형중이가 먹을 거랑 제가 먹고 싶은 거 이렇게. 저는 건강한 맛을 좋아하는데, 형중이는 채소가 들어가면 일단 다 안 좋아하거든요.


현진 님이 좋아하는 재료는 뭐에요? 요즘은 뿌리채소를 가지고 자주 요리해요. 우엉, 당근, 양파, 감자, 이런 거.


엄마한테 배운 요리도 있어요?

집에서 해준 것만 먹고 자라다가 독립하고 일본에 가면서 요리를 처음 했어요. 그래서 따로 엄마한테 요리를 배우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전화로 레시피를 물어본 적은 있어요. 멋있는 메뉴가 아닌데 말해도 되나요?

아, 당연하죠.

‘호박 새우젓 볶음’이요. 엄마가 자주 해주던 반찬이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물어봤어요. 엄청 간단해요.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어서 새우젓을 넣고 볶는 게 다예요. 채소에서 물이 나오고 새우젓으로 간이 되니까 다른 기교 없이도 짭조름하고 촉촉한 반찬이 돼요. 엄마가 해주는 새우 미역국도 맛있어요. 말린 새우가 아닌 통통한 생새우를 듬뿍 넣고 끓인 음식이에요. 집에서 해 먹었는데, 형중인 역시 안 먹고 저만 맛있게 먹었어요.





엄마랑 통화는 자주 해요?

자주 안 해요. 저도 엄마도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전화가 잘 안 오고 저도 잘 안 해요. 가끔씩 전화하면 서로 “와~ 진짜 전화 한 번을 안 하네” 하며 웃어요.


간만에 통화하면 할 얘기가 많겠어요. 아니, 오히려 별로 없을까요?

없어요. 용건만 간단히. 할 말이 있을 때만 통화를 하는 것 같네요. 최근에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저희 부부가 오래 슬픔에 잠겨 있었어요.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아주 큰 시련이었어요. 그 시절을 건너느라 작년엔 엄마랑 통화를 좀 길게,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위로가 좀 되었나요?


엄마 목소리 듣는 자체가 위로되죠. 위로의 말을 해주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오히려 대놓고 위로하고 격려했으면 통화하기 싫었을 거에요. 가족이랑 막 살갑게 지내는 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 무렵 오빠랑도 통화했다고요.

두 살 터울 오빠가 있어요. 오빠가 마침 엄마 집에 와 있어서 제 전화를 받았어요. 목소리를 듣자마자 제가 울컥, 울어버렸어요. 오빠가 질겁하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넘기더라고요. “아, 뭐야? 엄마 얘 울어~” 하면서요(웃음). 오빠랑은 그 정도 사이에요.





가장 최근에 엄마랑 연락한 건 언제예요?

오늘 촬영 때문에 엄마 옛날 사진 보내 달라고 하면서요. 30대 중반의 엄마 사진을 받았는데, 지금 저보다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서 있는 엄마를 보니까 멋있고 대견하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있는 어색한 자리에서 저는 제가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진 님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낯 가리는 성격이 아니라,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하는 거구나.

먼저 말 건네고, 상대가 입을 열 수 있게 먼저 질문하고, 그럼 돼요. 누구나 다 돼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본 현진 님은 주변 사람들 잘 챙기는 다정한 모습이었는데, 무뚝뚝하다니 의외에요.

닭살이 돋는 걸 잘 못 참겠어요. 만나서 얘기하면 괜찮은데 유난히 통화나 메시지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인터뷰도 부디 담백하게 편집해주세요.


통화는 잘 안 해도 엄마 생각은 자주 할 것 같아요.

예쁜 옷 보면 생각나요. 엄마한테 어울리겠는데, 사주고 싶다, 근데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지 않나요?


아니요. 저는 그런 적 없었던 것 같은데요(웃음).

아, 그래요? 일본에서 다니던 회사가 옷을 다뤘어요. 그때 제가 엄마한테 옷을 많이 줬는데, 아직도 잘 입고 다니시거든요. 저는 브랜드를 안 가리고 옷을 사지만, 이제는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라서 소재를 보고 고르려고 해요. 모양이 덜 예뻐도 자극이 없는 재질을 골라요. 속옷도 되는대로 입다가 이제 면 100%만 사기 시작했어요. 좋은 소재에 디자인까지 예쁘면 엄마도 사주고 싶단 생각이 들고요.


어렸을 때는 어떤 성격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해준 얘기로는 낯을 정말 안 가리는 아이였어요. 아무한테나 웃고, 반갑게 인사하고, 퉁명스러운 사람한테도 해맑게 안겨서 그 사람을 웃게 해줬다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적극적이었어요. 책도 나서서 읽겠다고 하고, 발표도 손들어서 먼저 하고요. 고학년이 되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난 것 같아요. 이후에는 나대는 일 없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누가 뭐라고 해서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걸요? 유난히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회화를 거쳐 겉으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과하게 외향적인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말수가 줄어드는 것처럼요.


그런 경향이 있긴 하죠. 현진 님은 적극적인 아이였군요. 어렸을 땐 뭘 좋아했어요?

꽃이요. 어렸을 때 제 사진 보면 거의 길에서 딴 꽃을 들고 서 있어요. 자연을 좋아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나무, 꽃 이름을 많이 알았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예뻐 보였던 것 같아요. 지금도 꽃 사러 가는 거 좋아해요.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자랐나요? 충청도 아빠 고향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잠시 자라긴 했어요. 학교는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다녔고요. 아장아장 걷던 때, 엄마랑 할머니가 저를 집에 재워 두고 밭일을 하러 갔는데, 제가 깨서 엄마를 찾으러 나온 거예요. 멀리까지 걸어 나온 바람에 길을 잃었어요. 다행히 금방 동네 사람이 엄마한테 데려다주긴 했는데, 그때 충격에 한동안 엄마랑 잠시도 떨어져 있지 못했어요. 엄마가 어딜 가든 다 따라다니고요. 초등학생 때도 엄마, 아빠랑 꼭 같이 잤어요. 이후에 따로 자게 되었는데, 떨어지는 게 억울해서 안방 쪽 벽을 치며 통곡했던 기억이 있네요.


엄마랑 사이가 좋았나 봐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엄마와 딸이었어요. 엄마가 전업주부라서 같이 지낸 시간이 많긴 했어요.


계속 평범했다고 하는데, 엄마 자랑 한 번 해주세요.

음…엄마는 예뻤어요(웃음). 스물다섯 살에 엄마가 된, 비교적 젊은 엄마기도 했고요.




엄마 나이 마흔 즈음.

엄마가 예쁜 건, 어떤 때 좋아요?

학교 왔을 때요(웃음). 엄마가 한국 무용을 취미로 했는데, 무용수처럼 날씬했어요. 하루는 청바지에 피케 셔츠를 입고 학교에 왔어요. 고등학교 때였는데, 친구들이 “야, 너희 엄마 꼭 우리 또래처럼 입고 다니네. 되게 예쁘시다.’ 라 말했던 기억도 나요. 아, 엄마는 또 운전을 잘했어요. 운전할 때 멋있어요. 아니, 근데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하는 거 다 예쁘고 좋아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럼 반대로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던 때, 부딪혔던 때도 있어요? 아니, 사전 질문지랑 내용이 다른데요? 연습한 그대로 와서 말하려 했는데(웃음). 음,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싸움, 갈등 이런 걸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불편해서요.


갈등이야 모두가 안 좋아하죠. 살다 보면 자꾸 생겨서 피할 수 없어서 그렇지. 궁금해요. 어떻게 피하면 안 부딪히며 살 수 있나요?

인간관계가 좁아요. 애초에 불편하지 않을 사람만 만나는 것 같아요. 굳이 넓히려고 하지도 않아요. 음, 말하자면 관계에 있어서 좀 가식적이에요(웃음).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모습은 그냥 숨겨요.


엄마가 현진 님과 반대되는 의견을 낸 적도 없나요?

가족이 다 비슷하게 유쾌한 성격이라 심각한 얘기를 잘 안 해요. 무거운 분위기인 적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마냥 긍정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요. 굳이 떠올려보면 제가 대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엄마가 학교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웃음). 남은 학비 너한테 줄 테니까, 학교 억지로 나가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강아지도 좋아하니까 당시 유행하던 애견 숍 이런 걸 추천해주기도 했어요. 아니. 나 그냥 졸업할래, 하고 학교로 돌아갔죠.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가 같이 있었나 봐요.

있긴 했는데, 요즘처럼은 아니고 애완견 느낌으로 키웠어요. 마지막에 키우던 강아지 코코는 정말 자식처럼 키우고, 가족으로 지냈죠.





어떤 선택을 앞두고 엄마의 조언이 필요했던 적이 있나요?

선택을 앞두면 저는 최대한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몇 없는 친구에게 일단 다 물어봐요. 그러면 선택의 무게가 좀 덜어져요. 따로 엄마한테 조언을 구한 기억은 없는데, 20대 초반에 결혼한 제게 엄마가 해준 덕담은 잘 간직하고 있어요.


어떤 덕담이었어요?

별거 없어요. ‘재밌게 살아. 즐겁게 지내고.’

그게 현진 님의 중심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것 같아 편안해 보이거든요.


재밌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불편해하는 일은 피하려고 하고, 어려운 일 앞에서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려 노력해요.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으니 뒤돌아보지 않고요. 오히려 요즘엔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형중이가 가끔 저한테 생각 좀 하라고 하거든요(웃음).



살면서 가장 큰 결정이라 생각하는 게 뭐에요? 도쿄로 유학 간 거요. 근데 그때도 별생각이 없긴 했어요. 제가 일본어를 전공했고, 당시에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처음 알게 되어 신기한 마음에 신청했거든요.


7년까지 있을 생각이 없었군요.

처음 비자는 1년짜리였는데, 형중이랑 일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거기서 결혼도 하고 일도 하느라 길어졌어요.


형중 님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다고요.

네. 이제 부모님이랑 시부모님이 똑같이 편해요. 부모님들도 어려서부터 저희를 봤으니 지금도 애들처럼 여겨 주시는 것 같고요. 일본에 있을 때 결혼했는데, 그게 좋았어요. 결혼 몇 년 차에 아이가 몇이고, 남편 직업이 뭐고, 무슨 아파트 살고, 이런 비교를 하거나 당하지 않을 수 있어서요. 결혼 13년 차, 연애는 2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그저 평범한 연인 사이처럼 지내요. 가끔 곤란한 일을 겪을 때면 형중이한테 얘기해요. 객관적으로 누가 잘못했는지 말해주는데, 거기서 위안을 얻는 것 같아요. 다시 안 볼 사람과의 일이면 무조건 제 편을 들어줘요. 그것도 물론 좋고요.





오래 사용한 아이템 얘기를 해볼까요? 시아버님한테 받은 물건이라고요.

네. 가지고 계시던 시계를 ‘이제 너희가 다 가져가라’면서 형중이랑 저한테 하나씩 주셨어요. 평소에도 시계를 자주 차는데, 금장 시계는 하나도 없었거든요. 줄만 바꿔서 잘 차고 다녀요. 남자 디자인이면서 사이즈가 작아서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클래식한 디자인의 물건은 이렇게 세대를 거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좋아요. 누구 물려주려는 건 아니지만, 오래 쓰려고 기왕이면 기본 디자인을 골라요. 같은 디자인이면 돈 좀 더 들여서 잘 만들어진 걸 사려고 하고요. 같이 가져온 이 지갑은 10년 전에 브랜드 매장에서 산 건데, 사자마자 코코가 물어뜯었어요. 그때 코코는 갓 한 살인 어린 강아지였거든요. 그 자국이 귀여워서 지금도 잘 가지고 다녀요. 지갑도 물론 튼튼해요.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뭐에요?

발리요. 최근 5년간 매년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못 갔어요. 서핑이나 요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그 느긋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다녀온 지 1년이 돼서 요즘 발리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고민 같은 거는요?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에요. 고민을 하면서 사람이 발전하는 것 같은데, 저는 고민이 없어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게 고민이에요.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정현우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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