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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지, 서른, 두 딸의 엄마이자, 자유


연지는 인생을 자유자재로 부린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유유히 원하는 삶을 산다. 그가 아는 건 단지 더 많은 걸 가지려 하기 전에 가지고 싶은 걸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삶은 늘 계획에 없던 일투성이지만, 연지는 그 안에서 마음껏 산다.

최연지, 일러스트레이터

@kikanunneong
















아이 데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죠. 와줘서 고마워요.

추워서 고생했지만 즐겁게 왔어요. 서울 가서 돈가스 먹고, 스티커 사고, 케이크도 먹기로 했거든요. 촬영 전에 돈가스를 먹었으니, 인터뷰 마치고는 카페에 가려고요.


두 살, 다섯 살 아이의 엄마예요.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요.

평일을 기준으로 얘기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첫째 이솔이가 어린이집에 가요. 둘째 밥 챙기고, 낮잠 재우고, 집안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이솔이가 하원해요. 그럼 같이 놀다가 저녁 먹고, 아이들 씻기고 재워요. 밤에는 혼자 운동을 해요. 요새 유튜브도 있고, 애플리케이션도 잘 나와서 집에서 운동하기 좋거든요. 틈이 나면 넷플릭스를 보기도 해요.


오, 넷플릭스 뭐 봐요?

스위트홈이요. 남편이 출장 가 있어서 밤에 혼자 보기는 좀 무섭고, 주로 낮에 봐요. 아, 종종 육아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해요. 식탁에 앉아서 아이패드 ‘프로 크리에이트’ 애플리케이션 사용해서요. 브런치블로그에 짧은 글과 일러스트를 함께 업로드하고 있어요.


둘째 은결이가 곧 돌을 앞두고 있다고요. 둘째를 키우는 일은 어때요?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있어요. 첫째랑 정말 다른데, 다른 건 부모 마음인 것 같아요. 한 번 겪어본 다음이라 알거든요. 이 시기엔 어떤 행동을 하고, 이 때도 곧 지나간다는 걸. 편하게 마음을 먹으니까 다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짜증을 부려도 ‘아유, 그랬어?’ 하며 받아줄 여유도 되고, 어디가 불편한지 금방 알아내서 채워줄 수도 있어요.





저흰 사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잖아요. 그 무렵 기억을 되살려서 연지 님은 어떤 아이였는지 알려주세요.

되게 키우기 힘들었대요. 입도 짧고 매사에 까다롭게 굴어서요.


오? 상상이 잘 안 돼요. 밥양이 적은 건 그렇다 쳐도 되게 원만해 보이는데요? 사실 저는 별로 기억이 안 나요. 뭐 그냥저냥 자랐던 것 같은데 엄마 말로는 그래요. 조금이라도 뭔가 틀어지는 걸 싫어하는 까탈스러운 아이였대요. 아침에 유치원 보내려고 엄마가 머리 묶어주잖아요, 그러면 거울을 보고 조금이라도 매듭이 동그랗지 않거나 틀어지면 애써 묶은 머리를 풀어버렸대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그 얘기를 곱씹어보니 엄마가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그럼 반대로 연지 님은 엄마를 어떻게 기억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서운한 게 되게 많은 아이였어요.


어떤 게 그렇게 어린 연지 님을 서운하게 했을까요?

학교 갔다가 왔는데 엄마가 집에 없고 그런 거요(웃음).


엄마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학습지 선생님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요양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했고요. 요양원이 일이 많으니까 엄마가 항상 바빴던 기억이 나요. 저는 항상 서운해하고.


집에 아무도 없으면 TV도 보고, 게임도 하고, 친구 불러서 맘대로 놀 수 있어서 좋을 때도 있지 않나요? 뭐가 그렇게 서운했어요? 이 역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요. 문 탕! 열고 들어왔는데 집에 냉장고 웅웅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게 쓸쓸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일기장에 쓴 시를 보면 어렴풋이 느껴져요. ‘내가 아침밥을 먹는 이유, 엄마랑 시간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렇게라도 같이 있고 싶다고 엄마한테 어필을 했나 봐요.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이였네요. 저희 알고 보니 유년시절 동선도 겹치더라고요. 전주에서 태어나서 포항에서 자랐죠?

네. 좀 복잡한데 전주에서 태어났고, 순천으로 갔다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 전주로 돌아왔어요. 그러다 포항으로 전학을 갔고, 고등학교는 경주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다녔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포항에 계세요.


대안학교로 진학했죠? 특이한 선택이라고 느꼈어요. 궁금해요. 어떤 학교에요?

엄마, 아빠가 원불교를 다니는데, 그 재단 학교라 알게 됐어요. 중학교 때 제가 공부에 소질이 별로 없다는 걸 감지한 부모님이 ‘가서 사람이나 되라’고 추천해줬어요. 가면 공부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도 되게 큰 결심을 한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는데, 그저 저를 믿고 보낸 거니까요. 그대로 동네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한 게 저한테도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근처에 논과 밭 뿐인 조용한 학교였는데, 시내에 살 때보다 더 자유로웠고요.


공부 외 경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매주 수요일에 등산을 했어요. 오전 수업만 하고 점심 먹고 나면 각자 알아서 몇 시까지 무슨 산 정상에 가서 이름을 쓰고 내려오는 거에요. 출발 시간도, 올라가는 속도, 쉬는 타이밍까지 그냥 자기한테 맞추면 돼요. 텃밭 가꾸기나 한국 전통 활쏘기인 국궁 수업도 있었어요.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도보 행군도 하고, 아침에 운동장에 모여서 태권도도 하고. 또 대추혈 문지르기 같은 것도 배웠어요.


대추혈이 어디죠?

고개를 숙였을 때 목 뒤쪽으로 튀어나오는 뼈에요. 그걸 문지르면 몸이 따뜻해져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수능을 위한 공부 말고도 세상을 사는 데 알아야 할 게 많잖아요. 많이 배웠겠어요.

아무래도 레이더가 바짝 서 있는 시기니까요. 어떤 배경에서도 다들 그 시기에 뭔가를 삶에 중요한 뭔가를 배우는 것 같아요. 기숙사에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자기감정도 다스리기 어려운 질풍노도의 아이들이 모여있다 보니, 매일 문제가 생기고 그걸 해결하는 일의 반복이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미술 입시를 하느라 매일 나와의 싸움이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포항까지 미술 학원에 다녀야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서 온 게 아까워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간절함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그때 배운 것 같아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고3 때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던 건, 아마 그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그땐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다음엔요?

공예디자인 과를 진학했어요. 금속, 도자, 염직 중에 저는 금속을 선택해서 공부했고요. 대학원은 아예 금속공예학과로 입학해서 공부했어요.

금속공예가 잘 맞았나 봐요.

단단한 금속을 다루려면 힘이 많이 들어가요. 제가 몸집이 작은 편이라 힘이 달린다고 느낄 때가 많긴 했지만, 금속을 만지는 게 좋았어요. 염직이나 도자는 제단을 아무리 반듯하게 해도 바느질이나 굽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예측할 수 없는 변형이 생기거든요. 금속은 의도한 그대로 결과물이 나와요. 각을 잡아놓으면 계산한 대로 맞물리고요. 작고 얇은 금속을 갈고 깎아 미세한 작업을 하느라 집중하는 과정도 좋고요.




1994년, 엄마 나이 32.


지금 나의 나이 무렵 엄마의 사진을 부탁했어요.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에요. 오빠랑 저랑 엄마가 집에서 장난감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인데 편하고 즐거워 보이죠? 폭탄 머리를 헤어밴드로 눌러 정리한 엄마가 사랑스러워요.


지금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뭐에요?

차 사진이요. 꽃차를 우리고 있는 주전자가 보이네요. 요즘 엄마 취미에요.


취미 활동에 푹 빠지셨나 봐요.

엄마는 늘 배우는 데 진심인 사람이에요. 꽃차는 1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얼마 전에 자격증도 땄어요. 도자기 만드는 수업도 계속 듣다가, 요즘은 혼자 집에서 만들어요. 저와 오빠가 독립했으니 쉴 만도 한데, 엄마는 그게 잘 안되나 봐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엄마는 사회 복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요양원에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도 시작하셨죠. 엄마한테 이런 점은 배우고 싶어요.


호기심, 적극적인 태도 이런 거요?

‘나도 해봐야겠다.’에 가까운 마음이에요. 나보다 나이가 두 배 많은 엄마도 여전히 도전하는 걸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엄마 나이에 도자기를 배워서 공방을 차리는 사람도 있다며, 넌지시 엄마도 공방을 차리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저는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둬서 그런지, 자기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게 굉장히 멀게만 느껴지거든요. 근데 꼭 대학원까지 졸업해야 공방을 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엄마 얘기를 들으면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돼요. 엄마의 여러 가지 취미와 열정적인 활동은 제 안에 닫혀있는 문들을 열 수 있게 도와줘요.





엄마가 종종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좋은 말을 많이 해줬어요. 예전부터 자주 했던 얘기인데 요즘에 와서야 와 닿는 얘기들도 있어요. 잔잔하고 맑은 냇가에 가보면 바닥에 돌멩이, 물고기, 작은 곤충, 흙까지 다 보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손을 넣어서 흔들면 흙탕물이 되면서 물속이 하나도 안 보여요. 그게 마음이랑 똑같대요.


마음이 평화로우면 내 마음이 잘 보여서 뭘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 알기 쉬워요. 하지만 짜증이 나거나 당황했을 때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뭔가를 시도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가라앉히라고 말했거든요. 어릴 때는 시험 볼 때 그 말이 떠올랐어요. 시험지 앞에서 긴장을 가라앉힐 수 있었죠. 그렇다고 답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웃음). 요즘에도 울컥 뭔가가 끓어오를 때, 바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요. 그른 선택을 하지 않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연지 님이 엄마한테 자주 하는 말은요?

‘뭐해?’. 엄마 뭐하냐고 자주 물어봐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알려준 일터에 전화해서 ‘뭐하냐’고 물었어요. 사무실 직원들한테도 유명했어요. 어쩌다 마주치면 ‘네가 그 연지구나!’ 할 정도로요. 혼자서 심심해서 그랬지 않을까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아이들 돌보다가 짬이 나면 엄마 생각이 나요. 그래서 전화해서 물어봐요. ‘엄마, 뭐해?’


아, 귀엽네요. 그럼 엄마는 주로 뭐 하고 있나요?

블로그하고 있다고 말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엄마는 비공개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사진도 찍어 올리고, 그에 대한 글도 써요. 아이들 사진 편집해서 책을 만들어주겠다고, 요즘은 그 일도 자주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신고 온 신발 얘기 좀 해볼까요? 원래 엄마가 젊을 때 신던 거라고요.

한참 옷에 관심 많을 때가 있었어요. 엄마 옷장 뒤지는 걸 좋아했는데, 엄마가 정리하느라 안 입는 옷을 다 버린 거에요. 그나마 신발은 좀 남아 있더라고요. 그때 가져와서 대학생 때 내내 신고 요즘도 자주 신어요.


옷 좋아할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어떤 스타일이었어요?

톤 맞춰서 입는 걸 좋아했어요. 분홍색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맞추고 몇 개만 포인트로 다른 색을 입는 식으로요. 워커를 특히 자주 신었어요. 반바지에 부츠, 그리고 위에는 긴 팔, 이렇게요(웃음). 그래서 신발장에서 딱 이 부츠가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상태도 좋았고, 잘 신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대학교 때 너무 자주 신어서 밑창이 떨어졌어요. 학교 앞 구둣방에서 가죽도 꿰매고 못도 박아줘서 지금까지 신고 있어요. 가까이서 보면 바느질 자국이 보여요. 그 이후로도 오래 신어서 지금은 앞코가 깨져 있는데, 신는 데 불편함이 없어서 그냥 다녀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엄마의 물건이니까 더 잘 이용하고, 애용하고 싶은 느낌? 아기들이 엄마 신발 괜히 한 번씩 신어보고 그러잖아요. 엄마가 젊었을 때 신던 신발을 신으면, 내가 그때 그 엄마의 나이를 지나고 있구나! 생각도 들고요. 또 제가 이 신발 신은 걸 보면 아빠가 되게 뿌듯해 해요.


지금까지 좋았던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갈등이 있던 적도 있죠?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없어요. 엄마, 아빠는 제 선택에 반대하지 않고, 늘 그저 알았다고 해줘요.


학업은 앞에서 얘기했고, 그다음에도요?

결혼한다고 했을 때 좀 놀라신 것 같은데, 그때도 별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지금도 제 인생에 대한 선택은 일절 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저 지켜보는 스타일? 어릴 때부터 누가 대신 골라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다음엔 ‘힘들어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할 수 있고요.


학교와 결혼 사이에도 혼자 결정하고 책임진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휴학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어요. 평생 봐 온 익숙한 풍경 말고 다른 걸 보고 싶었어요. 간판의 폰트나 다른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들처럼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친구가 바라나시에 머물고 있었어요. 친구가 있을 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학 때 한 달 정도 다녀왔어요. 원래도 인센스 향을 좋아했는데, 다녀오니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시각적으로 화려한 동네에서 지내다 보니 옷을 입을 때 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여행을 다녀오니 더 많은 걸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비자를 받기가 어려워서 호주로 갔어요.


호주에서의 색다른 환경은 어땠어요?

가자마자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국보다 기초 시급이 높잖아요. 그래서 돈을 벌려고 일을 많이 했어요. 그땐 사고 싶은 건 뭐든 샀어요. 길 가다 예쁜 게 보이면 그냥 사고 그랬어요(웃음). 이렇게 쇼핑에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요. 그게 진짜 재밌었어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애쓰는 일도, 돈 쓰는 일도. 아이들이 더 크면 뭘 같이 해보고 싶어요?

남편이랑 가끔 얘기해요. 인도에 요가원에 넷이 같이 가보고 싶어요. 전 인도에 다시 가보고 싶고, 남편은 안 가봐서 궁금해하거든요. 둘 다 요가에 관심이 많기도 해요. 지금은 유튜브 틀어놓고 얼기설기 따라 하는 정도지만, 한 달쯤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요가를 배워보고 싶어요. 애들이 같이 가주면 좋겠네요.





인터뷰하면서 연지 님은 별로 고민 없이 사는 스타일인가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 같아요.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어려움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단단함 같은 게 느껴져요.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게 있어요. 우리는 무수히 많은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구나.

예전에 서툴렀던 걸 어른이 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이솔이는 저처럼 손을 써서 가위질하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색칠놀이를 할 때 보니까 칸을 안 삐져나가고 색을 칠하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더라고요. 아이는 힘 조절이 어려우니까요. 좋아하는 걸 하면서 맘대로 놀 수 있게 되기까지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데, 그 밖의 일은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요?


연지 님의 그런 생각은 이솔이와 은결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오늘날의 사회는 갈수록 ‘어떤 직장이 좋다,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기준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대신 결정해주는 일이 더욱 무색해지는 것 같아요. 이솔이와 은결이가 스스로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정해진 것이 없어 매번 고민하면서요.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선택하고 씩씩하게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인터뷰와 글, 조서형 에디터 사진과 영상, 정현우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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